기억하고 싶은 시

밤 눈 / 기형도

오 베로니가 2012. 11. 22. 17:58

 

                 밤눈  /    기형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