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헝거리 영화
감독 ; 라즐로 네메스
출연 ; 게자 뢰리히, 레벤터몰라르, 우르스 레힌, 토드 키르무트
아들의 주검이 도착했다…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반이 있었다.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이들은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더코만도’ 소속이었던 남자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그 아이가 사울의 아들이었을까? 하는 의문. 궁금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정황상 진짜 아들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게 영화에 있어서 절대 중요한 점은 아니다. <사울의 아들>에서 중요한 것은 '아들'이 아니라 '사울'이다. 사울은 그 아이가 보여준 기적에 대해 그것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했고, 그 과정에서 그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그를 묻어주고 싶어했다. 삶도 죽음도 의미없던 그 곳에서 사울은 어쨌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인지했고, 그것은 분명 기적과도 다름 없는 일이지 않았을까?
" 사울의 아들 " 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곧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가장 유력한 외국어영화상 후보입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사울 역의 게자 뢰리히의 연기는 놀라움 그 자체이며 오프닝부터 사용되는 아웃포커싱과 롱테이크는 영화의 주제를 체험하도록 해줍니다. 또한 음악을 배제하고 수용소 공간의 현장감만을 전합니다. 시각은 좁히고 청각은 넓혀 놓음으로써 사울이 느끼는 심리적 긴장, 압박감, 공포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정말 재밌는 영화가 아니다. 무겁고 답답하고 짓눌리는 영화다. 지루하기도 하다. 스토리도 별로 없다. 내용만 무거울 뿐 아니라 형식도 무겁다. 그러나 그 형식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수용소라는 공간, 그 답답함,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공간, 그 공간에서 느끼는 무기력함 그 모든것들이 그 때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슬픈 역사의. 현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