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시

여자를 위하여 / 이기철

오 베로니가 2016. 3. 30. 20:13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 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엄마]라고 네가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가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서 패배한 뒤
술 취해 스러지며 그의 이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 번 가르치고 열 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가 걸어온 발자국 헤며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 때...


이미 윤기 잃은 네 가슴에

더운 손 얹어 줄 사람도 여자다.

 

 너의 마지막 숨소리를 듣고
깨끗한 베옷을 마련할 사람
그 겸허하고 숭고한 이름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