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베로니가
2011. 4. 18. 15:42
조선후기의 화가 긍원 김양기는 |
본관 김해. 자 천리(千里). 호 긍원(肯園)·낭곡(浪谷). 김홍도(金弘道)의 아들이다.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전하는 바가 없다. 산수 ·화조 ·풍속화 등을 잘 그렸으며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았으나 전반적으로 아버지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산수화에서는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이인문(李寅文) 등의 화법도 얼마간 찾아볼 수 있다. 유작으로 《고목소림도(古木疎林圖)》(간송미술관 소장)를 비롯하여 《송하모정도(松下茅亭圖)》(호암미술관 소장)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영모도(翎毛圖)》(이상 고려대학박물관 소장) 《월전취적도(月前吹笛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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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시대 : 조선(朝鮮)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의 만득자(晩得子)인 김양기[호(號) 긍원(肯園)] 는 그 또한 그림을 남기고 있는데 공개된 작품(作品)은 몹시 드문 편이다. 그동안 공개된 산수(山水) 산수인물(山水人物) 및 영모(翎毛)에 있어서도 부친(父親)의 화풍(畵風)과 유사하며, 부친의 시문(時文)편지 등을 모아 [단원유묵첩『단원유묵첩(檀園遺墨帖)』]을 만들었기에 김홍도의 태어난 해를 분명히 알려준 공(功)도 있다. 워낙 부친이 거장(巨匠)이었기에 아들은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한계점이 김양기에게서도 예외는 아닌성 싶다. 물에서 노니는 오리는 영모화(翎毛畵)의 한 소재(素材)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그려졌다. 오리나 원앙같은 물새류는 고려시대 청자문양(靑磁文樣)으로도 빈번하게 등장되었다. 조선초 화적에서도 엿볼 수 있으니, 조선중기 화단에서는 이징(李澄 1581~1674이후) 등의 사계영모도(四季翎毛圖)의 범주에서 그려졌다. 특히 김홍도에 이르면 산수를 배경으로 명품들이 전래되고 있다. 아울러 이 소재는 시적(詩的) 정취가 높은 서정적인 조선말(朝鮮末) 절지영모(折枝翎毛) 등에서도 한 소재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화면 중앙에 비스듬히 흐르는 시내에서 유영(遊泳)중인 암수 한쌍의 오리를비교적 크게 나타냈다. 배경의 바위는 좌하단과 우상단에 변각으로 등장되며, 연분홍 꽃이 핀 도화(桃花)를 곁들여 따사로운 봄날, 물 불어난 시내에서 유유자적하는 오리부부의 정겨움이 잘 나타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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