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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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 지하궁전
진시황릉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 시황제의 묘지이다. 여산 또는 역산이라고 불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산시성 시안 린퉁구 원산원에 있는 야산에 위치하여 있다.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8년간 공사를 했으며, 지금의 황릉은 야트막한 피라미드형으로, 시간이 지나며 그 높이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76m라는 높이를 자랑한다. 진시황릉은 당시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졌는데,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 있다. 외성의 둘레는 6.3km이고, 내성의 둘레는 2.5km이다.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산은 당시 내성이었던 부분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내부에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드는 등 천상과 지상을모방한 지하 궁전을 만들고 도굴자가 접근하면 화살이 자동 발사하는 시설..
2024.04.29 -
진시황제 비석
이곳 박물관으로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 한가했다. 비석과 능을 보러가는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에 상점들이 재미있어 이것 저것 기웃거리며 사고 싶은 것은 없지만 눈요기로는 만족한다. 극장도 보이고 식당앞에 조형물들도 재미있다. 촬영 포인트를 만들어 놓고 사진 찍는데 얼마씩 받는가 보다. 중국학자들이 1962년부터 본격적인 진시황릉 연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질탐사와 항공관측 등을 통해 사마천의 이야기(관광포인트 참조)가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흙 표면에서 35m 아래에 지하궁전이 있으며, 주변에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 지표면의 수은 함량을 조사한 결과 정상보다 20~30배 많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2024.04.27 -
병마용갱 3호 갱
입장하는 곳마다 여권이 필요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가이드한테 물어봤어야했는데 이제는 두가지 생각은 안된다. 지금 쓰려고 하니 궁금해졌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캐나다에서는 중국인들 입국을 불허한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다. 3호 갱 3호갱은 3개의 갱 중에서 규모가 520㎡로 가장 작다. 병사들의 지휘 본부로 추정되는 제3호 갱에서는 4마리 말이 끄는 전차 한 대와 68명의 병사가 출토되었다. 장교 병마용의 옷차림은 일반 병사와 약간 다른 것이 흥미롭다. 계급이 높은 병마용을 보면 목에 긴 스카프를 맸다. 한창 발굴 중인 갱을 바라보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욕망 끝은 어디였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1976년 5월 11일, 1호 용갱의 북서쪽 25m 지점에서 3..
2024.04.23 -
병마용 2호갱
2호갱은 아직도 출토작업이 많이 호전되어 있지 않아 흑 밑으로 많은 병사들이 숨죽이고 있다.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찾아 맞춘다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므로 천천히 세밀하게 해야할 것이다. 병사들의 신분에 따라 머리모양, 의상이 달랐다. • 3개의 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면적은 약 56,000㎡입니다. • 약 8,000여 점의 병마용, 520여 대의 전차, 130여 마리의 말이 출토되었습니다. • 병사들은 각기 다른 표정과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실제 전투 장면을 재현한 듯한 배치를 보여줍니다. •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 습니다.
2024.04.19 -
병마용갱 1호
둘째 날 진시황릉 병마용갱 불멸의 생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 크기로 제작한 병마용. 기원전 221년, 진시황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모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황제로 등극한 진시황은 죽어서도 영원한 권력을 누리고자 즉위 직후부터 38년 동안 70만명을 동원해 사후에 자신이 머물 능을 건설했다. 중국 시안 동북쪽 외곽의 여산 기슭에 있는 진시황릉은 폭 350m, 높이 76m 규모로 언뜻 보면 산처럼 보이는 규모를 자랑한다.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데 중국 정부가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그대로 둔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무덤의 전..
2024.04.17 -
화청지
둘째 날 1 시내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리 산(骊山) 일대는 알아주는 온천 지대다.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애용했던 온천이자, 당나라 6대 왕이었던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로맨스 무대였던 화청지가 유명하다. 747년에 현종은 온천을 좋아하는 양 귀비를 위해서 이곳에 대규모 공사를 실시했다. 온천을 확장한 것은 물론, 새로이 궁전을 짓고 궁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화청궁(华清宫)’이란 별궁을 완성했다. 양 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현종보다 35살이나 어렸고, 심지어 현종의 18째 아들인 이모의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였던 현종이 며느리의 미모에 반해서 부인으로 삼은 것이다. 호사가들은 중국 역사상 둘..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