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3. 13:41ㆍ카테고리 없음
고려는 한반도의 두 번째 통일 황조로 918년 건국하였다.
송악 < 개성 > 출신 왕건이 지방의 호젹세력들을 규합하여 성립한 고려는
고대 국가와는 구별되는 중세 국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백성에 대한 과도한 수탈을 억제하기 위해 전시과
제도를 만들고 각지에 지방관을 지속적으로 파견하였으며 , 과거제를 도입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층을 확보했다.
고려의 사상으로는 불교뿐 아니라 유교나 도교. 도첨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사상적인 측면 외에도 고려는 이민족에 대해 개방적이었으며 , 개경의 문벌 귀족 문화와 각 지역의 독특한 지방문화가 병존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를 다원적인 사회로 만들었다. 고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자국이었다.
또한 고려는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는 동시에 발해 유민을 흡수하면서 적극적인 북진정책을 추진하고
송, 거란<요 >여진<금>과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과 군사정책을 펼침으로서
격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경천사 10층 석탑
▶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석탑 중 하나로 용, 사자, 연꽃 무늬 등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황해도 개풍군 광덕면 중련리의 경천사지에 세워져 있었던 석탑으로 보물 제86호이다.
1909년경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어 오랫동안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있었는데,
1959년 재건에 착수하고 1960년 완공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석탑은 부재 전체가 회색의 대리석인데, 현 지대석은 본래의 것이 아니고 재건 때에 맞춘 것이다.
탑의 구성은 기단부 위에 탑신부와 상륜부가 건조되었는데,
각 부는 그 평면과 부재의 구조 등에서 각기 특수한 건조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탑신의 구조는 각 옥신 위에 옥개석을 겹겹이 쌓았는데, 옥신석의 각 모서리에는 원주형을 모각하고 각 층, 각 면에는
십이회상을 조각하여 불, 보살, 천부(天部), 기타의 문양을 빈틈없이 전면에 조각하였다.
상륜부의 각 부재 형태에서는 우리나라 탑의 상륜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원대의 라마(티베트) 수법을 엿볼 수 있다.
층 옥신 이맛돌에 새겨진 '지정 8년 무자 3월일' 이라는 기명(記銘)에 의하여 그 건립 연대를 1348년(충목왕 4)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 제2호)은 이 탑의 양식 수법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는 가문이나 문벌을 중시하는 귀족 중심의 사회였다. 이것은 후기에 많은 모순을 가져왔으나,
호화롭고 정교한 귀족 문화를 꽃피우기도 하였다. 또한, 국가의 정신적 지도 이념으로 불교가 크게 받들어져 불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귀족 생활의 발달과 불교의 융성으로 많은 예술품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도 고려자기는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아름다운 색깔이 중국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는 올린 유희좌를 한 관음보살이다.
높은 보관과화려한 영락 장식,미려한 얼굴 표정은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 불교의 특징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머리 위에 15개의 나무 부재를 못으로 이어붙여복장물을 납입할 수 있게 하였다.
실제 이 불상의 머리 안에는 고려시대 < 대수구다라니경 > 과 오색실이 ,
몸에는 씨앗을 담은 五寶甁이 들어 있었다.
고려는 불교를 사상적 원리로 삼았고 유학으로 중앙집권적 체제를 실현했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고
현종을 거쳐 문종 대에 국가 통치체제가 정비되었다.
귀족문화가 크게 발달하여 숙종·예종·인종대까지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12세기에 권력 독점에 반발한 무인란으로 붕괴되었다.
무인정권은 1231년 몽골군이 침입하자, 수도를 옮기고 저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아 자주성이 제약받았다. 공민왕 이후 개혁세력과 보수세력 간에 갈등이 심해진 후 멸망했다.
성리학과 풍수도참사상도 널리 퍼졌고, 인쇄술의 발달로 대장경 등을 간행했으며, 의학도 발전했다.
문학에서는 한시가, 예술작품으로는 청자가 대표적이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을 물리치려고 노력하였으나 권문세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동안 지방에서 성장해 온 신진 사대부 세력은 이성계 등 무인 세력과 손을 잡고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