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2011. 4. 17. 16:52그림

 

1745년 영조 21년에 평범한 중인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김홍도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어느 누구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재적 능력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인지, 10대부터 그의 능력은 인정을 받았답니다. 지난 회에 소개해 드렸던 화가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스무살이 되기 전에 도화원의 화가가 되었지요.


그의 평생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강세황에게 배운 것은 그림 뿐이 아니었습니다. 김홍도를 크게 아끼던 강세황은 그에게 시와 글도 가르쳤으니까요. 덕분에 김홍도는 여느 중인 출신의 화가들과 다르게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자신의 그림 곁에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그림 곁에 글을 써놓는 것이 진정한 문인의 풍류라 여겼거든요. 영화 “취화선”에도 글을 쓰지 못해 천대받은 장승업이 화를 내는 장면을 기억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김홍도는 눈이 맑고 키가 훤칠한데다, 용모가 빼어났다고 해요. 그리고 그가 쓰는 글이나 시를 보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선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거문고 연주도 수준급이었다고 합니다..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진행되는 그림 사업에는 그가 우두머리가 되었고, 왕의 초상을 그리는 작업에도 몇번이나 책임자로 활동하게 되죠. 게다가 중인으로서는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벼슬길에 오르기까지 하는 데요, 첫번째 부임지가 바로 스승 강세황과 함께 근무하는 장원서였습니다. 그곳은 궁중의 화초나 과실나무들을 관리하는 곳이었으니 화가출신 관리가 일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겠죠?

그가 마흔 다섯살이었을 즈음에는 정조의 지시로 영남지방을 두루 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산하를 그리는 훈련을 한 후에 그는 일본 쓰시마 섬으로 가서 지도를 그려옵니다. 그리고 중국에도 다녀오면서 외국의 사정을 왕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화가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김홍도가 그린 것은 풍속화만이 아니랍니다. 아래에서 소개해드리는 것처럼 그의 그림 중에는 꽃과 나무, 동물 등을 그린 정물화와 금강산 등을 그린 산수화, 건축물이나 궁중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재연하는 그림, 삼강오륜 같은 책에 들어가는 삽화 그리고 절에서 다루어지는 불교화까지 실로 그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그림에 손을 댄 듯합니다. 그의 그림들 모두 많은 이들의 요청에 의해 그려진 것이니 그의 인기를 가히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  시녀도 -1781년

 

-  춤 추는 아이 - 1778년

 

     

 

                                                            

                                                           

- 씨름도 -  1778년

 

- 서당도 - 1778년

 

- 소나무 아래 생황을 부는 어린 신선 -  1779년

 

 

- 나비 -1782 년

 

- 단원도 -1784년

 

- 명견대 -  1788년

 

- 죽서루 - 1788

 

- 봄맞아 지저귀는 까치 -1796년




 

 

- 빨 래 터  - 18세기후반

 

김홍도 [金弘道, 1745~?]

 
1. 김홍도의 생애

1745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가는 미술가 집안이었기 때문에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결혼한 뒤에는 도화서의 김응환에게 그림을 배웠다.

1771년 "이산"의 초상화를 그렸다.

1776년 정조에게 규장각도를 바쳤고,

1781년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

1789년 정조는 김홍도와 그의 스승 김응환에게 금강산의 산수화를 그릴 것을 명하였다.

1789년 몰래 일본 지도를 그릴 것을 명하였다.

1789년 김응환이 부산에서 병으로 죽자

김홍도는 대마도로 가서 일본의 지도를 모사해서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림을 그린 방법이 비슷하다고 하여 일본에서 첩보활동을 하면서 화가로 활동했다는 설이 있다.

1790년 사도세자를 위해서 지은 사찰인 용주사 대웅전에 운연법으로 입체감을 살린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다.

 

 

조선시대의 화가. 산수화·인물화·신선화(神仙畵)·불화(佛畵)·풍속화에 모두 능했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기법도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사조를 과감히 시도했는데 색채의 농담(濃淡)과 명암으로써 깊고 얕음과 원근감을 나타낸, 이른바 훈염기법(暈染技法)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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