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놀데

2011. 7. 6. 22:57그림

 

 

에밀 놀데 [ Emil Nolde ]

  • 원어    Emil Nolde
  • 본명    에밀 한센(Emil Hansen)
  • 출생-사망

    1867.8.7 ~ 1956.4.13

  • 국적    독일

  • 직업    화가

본명 에밀 한센(Emil Hansen). 독일의 화가, 판화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지방의 놀데에서 출생, 제뷸에서 사망. 목공예 기술자로 일하다 1889년부터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함. 1892~1898년 스위스에서 미술교사를 역임하고, 뮌헨, 파리, 코펜하겐을 방문. 1905~1907년 드레스덴에서 거주하며 독일 표현주의 작가그룹 〈브뤼케(Die Brücke)>에 참여. 인물, 풍경을 강렬한 색채와 현저한 데포르마숑으로 표현하며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 1909년부터 취급한 종교주제는 원시적인 육감성이 나타남. 그의 예술에는 반 고흐, 고갱, 뭉크 및 원시미술의 영향이 보임. 나치 정부에 의해 퇴폐예술이라 탄압을 받음. 수채화, 목판화, 석판화, 에칭에도 뛰어남. 대표작 『그리스도의 생애』의 토리프디카(1911~1912, 제뷸, 아다 운트 에밀 놀데 재단).

 

 


캔들 댄서


열두살의 그리스도

어린 그리스도의 머릿결과 그의 후광에서 강하게 발산되는 노랑은 어쩐지 불안하다. 혁명가 예수의 미래를 그리고자 한 것일까? 예수의 뒤에 드리워진 음산한 그림자는 예수가 떠안아야 할 짐인듯 무겁기만 하다.


성스러운 밤

동방박사를 인도하는  별빛이 노랗게  빛나고, 마리아 눈가에는 눈물자욱으로 번들거린다. 요셉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도둑 처럼 빛나는 새벽녘. "주여! 당신이 이 땅에 오심을 축복하나이다."


십자가에 못박힘

격정적인 종교화와 불길한 분위기를 담은 풍경화로 유명한 놀데는 젊은 시절 목각사(木刻師)로 일하며 생활했다.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던 때는 그 초기 작품 몇 점이 엽서로 제작되어 팔렸을 때뿐이었다. 파리에서 표현주의 화풍과 유사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1906년 브뤼케파에 가입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드레스덴에 근거지를 둔 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모임인 이 단체는 놀데의 '색채의 폭풍'(Storm of Colour)을 극찬했지만 놀데는 1년 뒤에 이 단체를 탈퇴했다.

종교에 열광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한 그는 〈황금 송아지를 에워싼 춤>〈알렉산드리아 항구〉와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는 연작 〈이집트인 성모 마리아의 전설> 중의 하나인데, 이 연작은 등장인물들의 에로틱한 광란, 그리고 악마 같고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들을 거친 도안과 조화되지 않는 색조로 그렸다. 1913년 그는 민족학 탐험대의 일원으로 동인도에 가서 소박한 신앙에 감명을 받고, 그 느낌을 석판화 〈무희 Dancer〉(1913)에 표현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놀데는 독일의 발트 해 연안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안개 자욱한 그 지방에 신비스러운 매력을 느껴 〈습지 정경 Marsh Landscape〉 (1916, 스위스 바젤 미술관) 같은 작품을 그렸는데,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낮은 수평선이 장엄한 느낌을 준다. 1916년 이후에 그린 풍경화는 초기 작품보다 더 차가운 색조를 띤다. 그러나 능숙하게 그린 꽃 그림들은 초기 작품의 화려한 채색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판화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히 거칠게 새긴 목판화의 흑백 효과가 뛰어나다.

놀데는 처음에 나치를 지지했는데 나치는 정권을 잡자 그의 작품을 '퇴폐적'이라 규정하고 작품 활동을 중지시켰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전의 주제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 마지막 작품인 〈자화상〉(1947, 제뷜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에는 여전히 힘찬 화필의 자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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