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 예르미타시박물관전

2018. 3. 8. 16:59전시회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수많은 시간 속에서 불멸의 꿈을 이룬 작품들을 만날 기회다.
그 시간과 열정은 고스란히 남아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단일 작품의 불멸성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역사의 흐름 자체에 있다.
전시는 프랑스 회화부터 러시아 컬렉터들이 모은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작품들은 고전주의, 로코코, 낭만주의, 인상주의로 나뉘어있다.
각 시기는 서양미술사에서 굵직굵직한 변화가 있는 시기들이고,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러시아 상페테부르크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두번째 협력이다.

2010년에는 한국미술이 예르미타시 박물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러시아에 존재하는

박물관이지만, 17~20세기 프랑스 미술의 걸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기초를 세운 예카테리나 2세와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 귀족, 기업가들이

프랑스 미술 작품을 열정적으로 모았기에 프랑스를 제외하면 프랑스 미술의 작품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이 되었다.


 계몽군주로 이름을 알린 예카테리나 2세의 열정적인 수집은 귀족들에게 이어져 러시아의 공공건물과 상류층의 저택을
수많은 프랑스 그림들이 장식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다분히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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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전주의, 위대한 세기의 미술
Classicism: Art of the Great Century

17세기의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통치 아래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위대한 세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젊은 프랑스 화가들이 돌아와 왕실 주도의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보편적인 원리와 질서, 안정과 통일성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양식이 17세기 프랑스 화단을 주도했습니다. 평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던 르 냉 형제의 작품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2부. 로코코와 계몽의 시대
Rococo and the Age of Enlightenment

18세기 초, 루이 14세의 사망 이후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 속에서 야외에서의 화려하고 우아한 연회 장면을 담은 그림들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카데미의 화가들도 풍부한 색채를 사용하면서 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등 점차 새로운 경향으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한편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가치를 담은 풍속화나 정물화, 초상화가 유행했고, 새롭게 풍경화에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3부. 혁명과 낭만주의 시대의 미술
Art in the Age of the Revolution and Romanticism

19세기로 접어들어 프랑스 미술은 나폴레옹의 통치와 일련의 혁명을 겪으며 변화의 세기를 맞이합니다. ‘신고전주의’를 계승한 화가들은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발전시켜나갔고, ‘낭만주의’ 화가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문학이나 신화, 동방의 신비로운 이야기에서 새로운 주제를 찾기도 했습니다.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나 외젠 부댕과 같이 야외로 나간 화가들은 변화하는 빛과 대기에 관심을 두면서 이후 인상주의의 출현을 예고했습니다.



4부. 인상주의와 그 이후
Impressionism and Beyond

19세기 말 이후 고전적 예술 양식과 완전히 결별한 혁신적인 화가들이 등장했습니다. 1880년 이후 모네는 대상의 형태보다 빛에 따라 순간적으로 변하는 색채의 표현에 더욱 집중했고, 폴 세잔은 자연을 본질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상징주의 화가 모리스 드니,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원시주의 화가 앙리 루소, 야수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인상주의 이후의 혁신을 이어나갔고, 이들은 20세기 미술을 향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예카테리나2세


전시관 입구의 겨울궁의 내부


겨울궁전 내부  < 대사의 계단 >


입장했을 때 마침 토슨스의 해설이 막 시작이었다. 크레오파트라의 그림 앞에서..

고전주의로 시작해서 인상주의의 역사로 흐르는 곳에서 마감한다. 

피에르 미냐르 /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르 랭 형제  /  술집의 농부들


장바 티스트 나티에  /  요셉과 보리발의 아내


코르비유 반 클레프 /  큐피트를 발견하는 퓨시케


쥘 조세프 르페브르 / 동굴속의 막달라 마리아


리콜라 푸생 /  십자가에서 내림



                              건축가 쥘 아르두앵-망사르의 초상 / 조제프 비비앵, Joseph Vivien / 1657-1734.

                     아르두앵-망사르는 17세기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베르사유 궁을 비롯하여

                              마를리궁, 파리의 앵발리드 대성당, 방돔광장, 승리광장 등의 유명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루이 14세의 신임을 얻어 궁정에서도 건축가로서 최고의 지위와 보상을 받았다


장오 퀴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리콜라이 구리 예프 백작의 초상



청동 조각상


위베르 로베르  /  콜로세움


에밀 장오라스 베르네  /  자화상


장레옹 제롬 /  로마시대의 노예시장


장 루이 부아이유  /  어린시절의 엘레나 파블로부나 여대공의 초상


샤를 앙드레 반 루 /  다이아나의 휴식


프랑수아 부셰  /  다리 건너기


외젠 부뎅  /  트르빌해변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  숲속의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소녀


루이레오 폴드 부알리   /  당구시합


세잔  / 마른강 기슭


클로드 모네  /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앙리 루소  /   방브 수문 좌측의 방어시설 경관


베르나르 뷔페 /  겨울궁전


이 그림으로 관람은 끝난다. 그래도 가슴 속에는 아직도 겨울궁전의 그림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예르미타시, 궁전에서 박물관으로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이 박물관으로 변화한 것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의 일이다. 혁명 후에는 여러 궁전에서 소장하고 있던 황실의 수집품이 국가로 귀속

되었고, 예르미타시와 겨울 궁전은 국립박물관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나치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에는 예르미타시박물관 직원들의

헌신적인 보호 활동으로 소장품이 안전할 수 있었다. 1948년 모스크바 서양미술관의 근현대 유럽 회화

작품들이 대거 이관되면서, 오늘날 예르미타시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화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 중

하나가 되었다. 

회화를 포함한 예르미타시박물관의 소장품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300만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