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2023. 1. 21. 18:09기억하고 싶은 시

 

 

 

설날 아침
                     -이해인 詩-

햇빛 한 접시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빠도 엄마도
하늘에 가고
안 계신 이 세상
우리 집은 어디일까요

일 년 내내
꼬까옷 입고 살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식구들 모두
패랭이꽃처럼 환히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네요

*펴낸 곳: 분도출판사
*1993년 5월 15일 초판
*이해인 기도 모음[사계절의 기도] 

 

 

 

 

1월의 시 / 정성수

 

 

친구여

최초의 새해가 왔다.

 

이제 날 저무는 주점에 앉아

쓸쓸한 추억을 슬퍼하지 말자.

 

잊을 수 없으므로 잊기로 하자.

이미 죽었다.

저 설레이던 우리들의 젊은 날

한마디 유언도 없이

시간 너머로 사라졌다.

 

스스로 거역할 수 없었던

돌풍과 해일의 시절

소리 없는 통곡과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던 사랑과

눈보라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영혼들

지혜가 오히려 부끄러웠던 시대는 갔다.

 

친구여, 새벽이다

우리가 갈 길은 멀지 않다.

 

그믐날이 오면 별이 뜨리니

술잔이 쓰러진 주점을 빠져나와

추억의 무덤 위에 흰 국화꽃을 던지고

너와 나의 푸른 눈빛으로

이제 막 우주의 문을 열기 시작한

저 하늘을 보자

 

지치지 않는 그 손과 함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길 위에

오늘도 어제처럼

투명한 햇빛은 눈부시리니.

 

 

 

 

 

 

1 / 이외수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은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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