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2024. 1. 19. 16:20나의자료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병상. 병실 창 밖으로는 푸른 하늘과 바다와 날아가는 갈매기가 보이는 곳.

부산에 있는 한 대학병원은 전망이 가장 좋은 병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환자들 가운데 95%는 암 환자들입니다.

 

“이 병실에 있던 환자는 어디 갔나요?”

“방을 바꿔달라고 원무과에 신청해서 지금 방 바꾸는 중이에요.”

 

2인용 병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마주 보는 두 개의 침대에는 하얀 시트만 깔려 있었지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환자는 옆방도 싫어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으로 옮겨버렸다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어느 침대든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요단강 건너기 마지막까지 머물다 간 자리입니다.

그렇게 빈곳은 모두가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기억을 비집고

나올까 봐 두렵기 때문이지요.

 

병실을 옮기는 환자의 심정을 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혹 예민한 환자들은 옆 침대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부터 ‘

그 다음은 내 차례’라고 여기며 남아 있는 시간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방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건

‘나도 곧 죽을 것이다’라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거나 옆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를 보는 것 모두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암 환자에게는

특별한 보살핌 외에도 다른 환자로부터의 차단도 필요합니다. 다른 환자의 죽음을 보면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름다운 임종을 보게 되면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힘든 임종을 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 자체가 공포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암 병동일수록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보다는 밝고 아늑한 분위기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느 병원을 가보아도 이런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2인실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양호하지만, 5~6인실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나쁩니다. 다인(여러 사람)실에 빽빽이 놓인 침대는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대부분의 환자는 상태가 위중한 환자 근처에는 가지 않습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병풍을 두른 것처럼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지요. 하지만 누워있는 환자는 이 모든 상황을 보지 않고도 오감으로 알게 됩니다.

 

“문 좀 닫으세요.”

“열어 놓으면 시원해서요.”

“좀 닫으라니까요. 냄새 나잖아요.”

 

가끔 병실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의 신체 조직에서는 괴사가 일어납니다.

 

병실에도 군번이 있는데, 오래된 고참 환자의 자리가 창가 옆입니다. 환자들은 병원에 갇혀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환기가 잘 되는 창가 자리를 선호합니다. 밖이라도 내다봐야 덜 갑갑할 정도로 병든 육신은 그들에게 감옥과 같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과 함께 온 병실에 창가에 자리한 환자의 체취까지 전달됩니다.

비리면서 퀴퀴한 암 환자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겁니다. 잘 돌봐주지 않아서 씻지도 못한 경우에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고약합니다. 그 냄새가 싫어서 비용을 더 지불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1인실로 방을 옮기는 사람도

가끔 있을 정도입니다.

 

환자들은 그런 병실에서 지내며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자신도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

아직 덜 위중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군가 죽어가는 걸 목격한 방 안에서는 의지가 한 번 꺾입니다. 죽어가는 이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은 누가 세상을 뜰 건지 대충 알아챕니다.

그토록 가고 싶던 창가 자리가 비더라도 그 자리에는 가지 않지요. 흰 시트만 까칠하게 깔려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병원에서도 잘 견디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는데,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는 편안 함은커녕 임종에 대한 두려움만 가중됩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풍경이 병원의 회색 벽이라는 사실이 인간을 얼마나 보잘것없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병원의 환경은

환자들을 위해 좀 더 개선돼야 합니다. 가족사진, 성경책, 작은 화분, 아끼던 물건 같은 것들이라도 곁에 두어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걸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작은 노력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임종을 대부분 병원에서 치르지만, 가급적 임종은 자신의 거처에서 치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집이 아니더라도 햇살, 바람, 나무 같은 자연을 느끼며 남겨진 시간을 묵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겠지요. 행복하게 이 지상에서 살았다는 기억,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모두 이 기억이 있으므로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임종을 치러본 경험이 없는 보호자라면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습니다. 조언을 얻거나 호스피스 교육을 받는 방법으로 의연한 대처 능력을 길러두는 게 좋습니다. 임종은 반드시 치러야 할 시험 같은 통과 의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한 모습입니다.

 

서로 소중한 가족으로 함께 살아왔기에, 이 땅에서의 마무리 또한 멋지고 아름다우면 좋겠습니다. 떠나는 사람의 평온하고 행복한 뒷모습은 남은 자에게 저 하늘에서 마지막 선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성당 연령회 회원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회의에 참석했다.

회장님 말씀이 요즘은 시신을 자식들이 병원에 기증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시신이 부족했는데 요즘은 남아 돌아 간다고 하시면서 더는 말씀을 안 하시는데..

병원에 기증하면 의대생들의 실험용으로 필요한 부분은 다 쓰고 나머지는

병원에서 깨끗하게 장례까지 해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도 그래서 자식들이 그렇게 하나 봅니다.

참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장기 기증은 나이가 있어서 못하는데 시신이라도 해서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남아 돈다니 그냥 가야겠네요.핑게김에 잘됐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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