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뒤를 잇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 ~ 1669)

2025. 2. 11. 13:58사진모음

 

 

 

 

 

카라바조 전시를 보다가 바로크 시대를 빛나게 했던 렘브란트를 그리고 루벤스가 궁금해졌다.

그림은 많이 보았지만 자세한 것들을 알아 보고 싶었다.

 2월2일 주보에 렘브란트의 ' 성전에 아가 예수를 봉헌함'  그림이 실려있었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 그의 작품은 깊은 감정과

심리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는 빛의 효과와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인물의 특징과 감정을 강조했다.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는

각기 다른 스타일과 기법으로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은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크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미적 경험을 넘어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 구원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으며, 그의 예술적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요약되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in, 1606 ~ 1669)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in, 1606 ~ 1669)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판화가로,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강렬한 명암 대비와 인간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들로 유명하며, 특히 인물화와 역사화를 통해 인류의 내면을 탐구했습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감정의 진실을 담아낸 예술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 분장한 자화상,  1661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 구원과 희망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으며, 그의 예술적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요약되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감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34세의 자화상

                              소리치듯 입을 벌린 자화상 . 1630

 

1630년 제작한 작은 자화상 판화 중 하나로, 훗날 그린 성서와 역사의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연습으로 여러가지 얼굴 표정을 그려본것으로 추정해 본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  1636.

 

 챙이 달린 16세기 스타일의 베레모를 렘브란트의 곁에 결혼한 전 아내 사스키아가 앉아 있다.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유일한 판화로 가장 유명한 판화 가운데 하나이다.

 

                                                           아담과 이브 1638년.

 

 

                                    세개의 십자가 , 1650년 

 

렘브란트의 대표적인 판화 작품으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에칭과 드라이포인트를 결합해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림은 사건의 고통과 숭고함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34세의 자화상

                                  웃고있는 제옥시스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의 빛과 어둠의 대조 기법(키아로스쿠로)을 네덜란드 화풍에 적용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기법은 그의 작품에 강렬한 효과와 극적인 감정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 인물화와 단체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렘브란트는 모델의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작품'투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 of Dr.Nicolaes Tulp)'는 단체 초상화의 전통적 구도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며, 등장인물들 간에 심리적 상호작용을 표현했습니다. '야경(The Night Watch)'은 그의 단체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정적 구도를 깨고, 등장인물들에게 움직임과 생동감을 준 작품으로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관객의 시선을 특정 인물이나 장면으로 유도하는 기법으로 그의 실력이 정점에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콜라스 투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  네덜란드 왕립빅물관

 

 

1715년 작품이 잘리기 전에 그려진 원작의 사진.

1715년에 이 작품은  안스테르담 시청의 벽의 기둥사이에 걸기 위해서 4면을 잘라냈다고 한다.

 

< 야간 순찰 >  야경.   1642년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정점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시민 방위대의 단체 초상화로 의뢰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전통적인 단체 초상화는 달리, 등장인물들이 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키아로스쿠로(빛과 어둠) 기법을 활용해 주요 인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며,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했습니다. 야경의 원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의 중대' 입니다.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와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빌렘 반 라히틴뷔르흐 중위의 부대다.

출결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원래 낮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너무 어둡게 그려진 

나머지 사람들이 밤에 순찰을 나가는 부대로 착각하고 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돌아온 탕아 . 1666~1668  , 러시아 상트베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렘브란트의 후기 대표작으로, 성경의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붓질로 부성애와 아들의 후회를 생생히 전달하며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아버지와 아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용서와 회개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성전에서 아기예수를 봉헌, 1629년 / 함부르크미술관

 

 

성전에 아기예수를 봉헌함, 1631년 /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이 그림의 중앙에 밝은 빛이 감도는 부분에는 예수를 안은 시몬과 그 옆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 그리고 유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있다.

또한 아기 예수를 보고 놀란 동작을 취하는 붉은색 예복을 입은 예언자 한나도 보인다.

시몬은 아기 예수를 감격한 듯 자신의 품에 안고 있으며,

그것을 두 명의 유대인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사람은 자기가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거부당하고 밑으로 내려갈 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그의 불행은 그를 피상적인 삶에서 건져 올렸고, 외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내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1669년 10월 4일 암스테르담의 빈민촌. 한 노인이 쓸쓸히 죽었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의 최후다. 당대 최고의 화가로 꼽혔던 그가 왜 이런 말년을 맞았을까. 빚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출생부터 인생 중반까지 풍요 속에서 지냈던 인물. 1606년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덴대학 입학 직후 학업을 접고 화가로 나서 처음부터 성공을 거두었다. 최초의 집단 초상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교실〉을 그렸을 즈음에는 귀족들이 그가 그린초상화를 얻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26세에는 명문가의 딸과 결혼해 명예는 물론 막대한 지참금도 챙겼다.

문제는 과용. 화구와 고서적, 소도구, 이탈리아 골동품을 구입하는 데 거액을 지출했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5층짜리 저택도 은행 대출로 사들였다. 불행은 가정과 금전, 두 측면에서 찾아왔다. 아이 넷 중 셋이 생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표작 〈야경〉을 완성한 1642년, 아내도 저세상으로 떠났다.

사별 이후 그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은행 빚을 못 갚아 1658년에는 저택도 경매에 부쳐졌다. 가난 속에서도 대작을 그려냈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27세로 사망(1665)한 뒤 4년 후 영욕의 생을 마감했다. 향년 63세.

굴곡진 삶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미술품 거래 회사를 설립하고 경매 시장을 활성화시켜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던 예술을 대중화한 선구자라는 분석과 철저한 반시장주의자였다는 해석이 상존한다. 깊은 신앙심을 지닌 성서 화가였다는 평가의 이면에 결혼을 요구하는 동거녀를 정신병원에 보낸 냉혈한이라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그를 '빚의 화가', '비즈(사업) 화가'보다는 '빛의 화가'로 기억한다는 점. 렘브란트의 화폭에 새겨진 영롱한 빛의 가격도 갈수록 비싸진다.   - 다믐 백과 -

 

'사진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새벽여행  (0) 2021.02.08
구원의 산에서 ..  (0) 2017.02.20
최고의 휴대폰 사진 20  (0) 2016.03.02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 / 이탈리아의 움 부리아  (0) 2013.12.24
빛의 예술  (0) 2013.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