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2026. 4. 17. 22:25역사 탐방

 

현충사

현충사, 사적 제155호, 충남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

사적 제155호. 1704년(숙종 30) 아산의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건립을 상소함에 따라 1706년에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현충사'로 사액되었다.

 

1865년(고종 2)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황폐화되었다가, 1932년 6월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여 영정을 봉안했다. 1962년 3월 1일 충청남도에서 경내를 확장하고, 유물전시관을 신축했다.

1967년 3월 18일 현충사를 사적 제155호로 지정했고, 이때 보호구역의 면적은 10만 6,577평이었다. 그후 1973년 5월 현충사 사적보호구역을 21만 6,137평으로 확장·지정했으며, 1974년 4월 42만 4,880평으로 다시 확장했다. 경역면적은 현재 16만 3,096평이며, 본전(本殿)·구본전(舊本殿)·홍살문·정려(旌閭)·고택(古宅)·활터·유물관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구본전은 배전(拜殿)으로 쓰이며,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문이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이완(李莞)·이홍무(李弘茂)·이봉상(李鳳祥)·이제빈(李悌彬) 등 5명의 편액이 있다. 또한 고택은 이순신이 성장한 집이며, 활터는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익힌 곳이다. 유물관에는 국보 제76호로 정해져 있는 〈난중일기 亂中日記〉·〈서간첩 書簡帖〉·〈임진장초 壬辰狀草〉, 보물 제326호로 지정된 장검(長劒)·옥로·요대·도배구대(桃盃俱臺) 등이 전시되어 있다. / 다음백과

 

 

 

 

 

 

 

 

 

 

효자, 열녀 기리는 정려

정조가 하사한 이순신과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 등 네 분의 충신편액과 팔대손 제빈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이 정려는 과거에는 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성역화 사업 당시 경내를 넓히고 조경을 하면서 지금과 같이 경내 연못 옆으로 자리하게 됐다. 또 원래 동남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는데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 서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체 복원했다.

 

 

 

 

이순신장군의 장인 , 장모의 묘.

 

 

 

 

 
이순신 고택.
이 집은 충무공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살던 집으로  이후 종손이 
대대로  1960년대까지 살았던 곳이다. 400여년간 종손들이 살면서 부분적으로
늘려 짓거나 고쳐지었으며 , 집 뒤편에는 이순신의 위패를 모신 가묘가 있다. 
매년 이순신이 전사한 날인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택 앞에는 홍매가 흐트러지게 피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셔터 소리가 난무하다.

 
이순신 장군이 혼인 후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고,
그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갈하다는 느낌이 주위를 더욱 더 고요하게 만들고 있다.

 

 

 

 

 

 

 

 

 

 

 

 

 

 

 

 

 

현충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현충사 안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다시 오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약 100여 년 뒤인 1706년 설립됐다.
1707년 조선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사액 현판을 하사하며 국가적으로
그 의미를 인정받았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조명되었다.
 

 
충무공 종가는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장군의 묘소 임야와 위토마저 은행에
저당 잡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위기였다.  이 소식은 1931년 \'동아일보\'에
민족적 수치라는 제목의 사설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직후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조직됐고, 보도 한달만에 연 2만 여명이 성금을 모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현충사를 중건했다. 종가 인근 지금의 본전 바로 아래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의 목조 기와집을 지어 올리고
그때까지 종손이 보관해오던 숙종의 사액현판을 다시 달았다.
 

숙종의 친필.

 
목련이 머지 않아 만개할 것이고  현충사의 나무들은 봄을 지나며 그 존재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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