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2010. 7. 4. 10:30그림

 

 

 

 

뭉크 Edvard Munch(1863∼1944) 이야기


죽음보다 격렬한 삶, 절망과 죽음의 심연에서 분출해 낸 구원의 노래.


나의 모친의 가계는 농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뿌리까지 어지럼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버지의 선조들은 천재적인
소질을 갖춘 시인이었지만 이들도 이미 타락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 곧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다.

그때 이미 어머니는 죽음의 씨앗을 몸 안에 갖고 있었다.
6년 후 어지럼 병이 다섯 어린 아이들에게서 어머니를 앗아갔다.
 

그렇게 병과 정신착란과 죽음이 마치 검은 천사처럼 내 요람을
지키고 있었고 일생 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동시에 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울하고 신경질적이 되었다.
부담에 겨워 핼쑥해 졌고 주기적으로 종교적인 발작을 보였는데,
그것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신을 불러대는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일찍 이 지상의 삶의 비참함과 위험요소들을
알아버렸고 또 죽음 이후에 오는 삶과 죄진 인간을 기다리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 대해 들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러한 종교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리와 장난치고 놀며 우리에게 동화를
들려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벌을 줄 때 그 영혼의 고통을 감내하기가 두 배나 더 어려웠다.

나는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광포함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에드바르트 뭉크


 

 

불안

 

뭉크의 분열증 증세는 1890년 도라 라우젠과의 연애로

고민과 알콜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지면서 신경 쇠약 상태가 한때

계속되어지기도 하는데, 공허한 듯하면서도 무엇의 의미를 찾으려는

기묘한 눈을 크게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옷의 군상(群像)의 표정은 뭉크의 자주 다루어진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면성(正面性)에 대하여 혹간 말하기를

분열병 심리에서의 표현성, 친화성(親和性)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뭉크의 근원적인 위문이나

불안이 이와 같은 일련의 작품을 창작토록 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저녁놀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산과들에서의 곡선적 효과는

불안한 감정을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한다.

유화에서 뿐만 아니라 목판화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표현을 많이 남기고 있다.

 

 

 병든 어린이

 

 

The Sick Child, 1885-1886

 

 

 

빨간 깔개 위에 앉은 소녀

 

 

 

빨간 덩굴 풀

 

 

 

귀가하는 노동자들

 

 

죽음과 소녀

 

죽음과 소녀(Tod und Madchen)

 

 

 

 

사춘기

 

 

 

마돈나

 

 

 

절규

 

 

엄마의 죽음

 

 

The Dead Mother 1899-1900 

뭉크의 그림에는 소리가 있다.
아니, 그 소리를 거부하거나 그 소리에 면밀하게
동화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이나 여인의 아름다움보다는
괴이한 표정들로 인간의 심적이거나 영혼의 상태를
극명하게 표현하여서 그 강력한 호소력을 과시한다.

 

우울한 로라

 

 

 Melancholy, Laura 

바다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튜립 화분이 있고
그 옆에 앉은 여인은 정말 제목처럼 멜랑코리하게 보이며
둥글고 시커멓게 그려진 두 눈은 퀭하니 암울하기까지 하다.
또한 주먹 져서 올려진 손과 그녀의 옷 차림은 답답함을 더해 준다.

테이블 보의 무늬들은 마치 붉게 끓어 오르는 내면을 덮은 듯이..
예까지 그림을 읽고 난 나는 이 여인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창문이라도 활짝 열고 바다를 향해 냅다 소리라도 질러버리라고..

대개 사람들은 밝은 면만을 좋아하고.. 추구하기도 하며..
또 애써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고 무언가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무감각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의식하던지 안 하던지
언제나 두 세계는 이러하게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