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 김청자 2

2014. 3. 10. 14:05나의자료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9천명의 고아를 돌보는 현지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 말라위 아이들을 위한 봉사로 인생 2막을 열었다.

 

김 교수는 그 동안 예술가로 누린 모든 것에 감사한다. 이제는 그 감사함을 되돌려줄 때"라며 "새로운 삶,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아프리카로 가기로 했다.

 

그가 아프리카에 대한 소명을 갖게 된 것은 2005년 안식년 때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부터. 노후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유럽, 미국, 아프리카 3대륙을 여행한 그는 아프리카의 매력에 푹 빠졌고, 한국에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돕기에 나섰다.

 

"그때부터 매년 두 차례씩 아프리카를 방문했어요. 제가 가톨릭 신자다 보니 선교 현장을 방문해 크고 작은 숙제를 받아왔죠. 우물을 파고, 병상을 마련하고, 학교를 짓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어요."

 

다행히 주변의 뜻있는 여러 사람이 동참했고,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1억2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아프리카로 보내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말라위로 떠났다. 지금 사는 집을 내놓은 그는 집을 처분한 돈 2억원 가량을 아프리카와 말라위를 위해 기부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와의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떠날 결심을 했어요. 멀리서 살면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안보일 수도 있으니까, 곁에서 가까이 살아야겠다 싶었죠."

 

잠비아, 모잠비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제껏 방문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 중에 특별히 말라위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어느 곳보다 도움이 절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말라위는 정말 가난하고, 열악하고, 고아가 많은 곳이에요. 하지만 사람들 성품이 온유하고, 평화로운 곳이기도 하죠.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어요. 한 나라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렸으니까요."

 

그는 현지에서 학교를 짓고, 교사들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마련하고, 우물을 파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 도움을 줄 후원자를 모집하는 한편, 아이들도 직접 가르치고 있다.

 

"음악과 춤이 그곳 사람들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 있어요. 음악적으로도 기여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그곳에서 제2의 김청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그는 고교 졸업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형제가 많아 스스로 독립을 위해 카톨릭 단체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 간호보조원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아우구스부르크의 레오폴드 모차르트음대, 오스트리아의 빈국립음대에서 공부한 뒤 1970년 한국 성악가 최초로 유럽 무대에 데뷔해 25년간 오페라 본고장에서 활약한 '원조' 해외파 성악가가 되었다.

 

그는 "음악가로서의 꿈을 다 이뤘으니, 이제 제가 아프리카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며 "육체의 고향이 한국, 정신의 고향이 독일이라면, 이제 제 영혼의 고향은 아프리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편리함과 동떨어진 생활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요. 하지만 조금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 여러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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