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0. 01:10ㆍ우리나라 이곳저곳
어린이박물관을 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다가 길 건너 향교와 인천도호부청사가 담 하나 사이에 있는것이 보였다.
점심을 먹고 들러 본 청사 앞마당에는 놀이문화체험 제기차기, 투호, 윷놀이, 팽이치기, 연날리기, 탈만들기 ,널뛰기 등
또 옛 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포토존도 있었다.
향교는 조선시대 당시 지방 학생들을 위한 학교 기능을 사용하였으며,서당보다 높고
성균관보다 낮은 중등교육기관이다.인천향교는건축된 시기는 확인하기가 어려우며,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최항의 중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세조 이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사서오경을 공부하고 강독하며 초시준비와 각종행사를 하던 곳으로 유학을 배우는 학당이었다
서제와 동제가 있는데 그 곳은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곳으로 유생들이 머물었던 곳이다.
공자를 비롯하여 16명의 중국 성현과 우리나라 유학의 대표적 성현18명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하는 곳이다
향교와 담 하나 사이에 있는 도호부청사는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조직은 1413년 ( 태종 13년 )에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도 밑에는 대도호부, 목 , 도호부 , 군 , 현 등이 있었으며
인천도호부내에는 10개의 면과
그 밑에 다수의 동 , 리 , 촌이 있었고 동 , 리 밑에는 매 5호를 한 개의 통으로 하는 5가작통제가 시행되었다.
도호부 중앙에서 파견된 도호부사 아래에 이, 호, 예, 병, 형, 공방의 6개 방을 두어 사무를 분담하게 하였는데
이를 담당하는 자는 지방의 향리였으며, 1485년 ( 성종 16년 ) 경국대전에 규정된 당시 도호부 향리의 수는 26인이나
그 수는 점차 증가되어인천 부읍지에 의하면
관할구역은 1748년 (영조24년) 당시에는 강화, 영종, 덕적도 등이 인천에 속했으며 인구는 6백여가구에 8천여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드려보고 , 쳐보고, 던져보고 , 써보고 , 널뛰기도 뛰어보고, 옷도 걸쳐보고, 굴렁쇠도 굴려보고.
굴렁쇠가 생각만큼 굴러지지 않는다.
삼문 ; 임금의 위패를 모신 객사에 출입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이다. 이 문도 세 개로 되어 있어
삼문이라 하는데 가운데 부분이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객사;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서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보다도 격이 높았으며 그런 만큼 관아 시설
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하며 가장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전패를 모시고 있는 가운데 채가전청이며 ,
부사가 정기적으로 예를 올리면서 임금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곳이었다.
공수 ; 객사의 부속건물로써 부엌, 곳간, 온돌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능으로는 객사를 관리하는
인원과 중앙 시신을 수행한 수행 인력들이 유숙하고 , 객사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들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 공수청이다.
동헌 ; 부사의 집무실로서 객사의 동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은 마루로 된 대청으로
지방의 일반행정업무와 재판이 여기서 행하여졌고 좌우의 온돌방은 숙식공간이라기 보다는
사무공간이나 응접공간이었다. 수령의 가족이 머무는 내아는 따로 배치되었다.
아문 ; 관아의 정문으로 2층으로 된 누대에 위풍당당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문은 세칸으로 나누어져 있어 외삼문이라 하는데 가운데 문은 주로 수령만이 출입하고 좌우문은 일반인이 사용하였다.
아문에 이르면 수령 이하 모든사람이 말에서 내려 걸어서 출입하는 것이 통례였으며 , 좌우에 건장한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았다. 또한 대문의 공간 일부를 이용하여 민원인 들의 임시 대기실로 쓰기도 했다.
쌍둥이들이 많은것을 보았지만 얼마나 많이 것들이 기억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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