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7. 22:39ㆍ우리나라 이곳저곳
계산성당을 나와 대구" 골목길투어"의 일부인 성당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가
벽에 써 있었고 그의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상화와 서상돈의 고택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계산성당 맞은편에 서있는 제일교회입니다.
경북 대구(大邱) 출생. 1919년 서울 중앙고보를 수료했다.
1919년 3·1운동 시위 행사를 준비했고, 1921년 박종화와 만나 《백조》 동인이 되었다.
1922년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으며,
이후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 및 문학을 공부하고 1924년 귀국했다.
1925년 <빈촌의 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경향파 문학에 가담했다.
1937년 북경에 머물고 있던 독립투사 이상정 장군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서
3개월간 머물다가 귀국했으나 일경에 피검되어 고초를 겪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말세의 희탄>, <단조(單調)>, <가을의 풍경>, <나의 침실로> 등이 있다. -지식 백과 -
벽에 " 빼았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가 쓰여져 있다. 조국을 빼앗긴 아픔을 현실에서 표현한 시 .
근대의 대구 예술인들의 사진과 그때의 모습들이 걸려 있었다.
서상돈(徐上敦, 1851~1913)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운동가였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이 되어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와 함께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대구시는 계산동 이상화 고택 옆에 있었던 서상돈의 생가를 복원하였고
국채보상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 지식백과 에서 -
골목을 나오니 한약방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야전골목이랍니다.
월요일이라 휴관이었다.
박물관 1층은 이렇게 많은 한약재들을 팔고 있나보다.
이 골목에는 염매 시장이 있고 , 시장 입구 길가에는 공예품들을 파는 상점도 있다.
예뿐 물건들을 들여다 보며 즐기는 재미 또한 나쁘지 않다.
떡전골목에는 이바지음식과 폐백드릴 때 쓰일 음식들을 진열해 놓고 파는 곳이 많았다.
오늘은 부곡온천에서 쉬고 내일을 일찍 창녕으로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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