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9. 19:38ㆍ나의자료실
신의 도시 바티칸
로마 마지막 편으로 바티칸을 보려고 하는데요,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바티칸은 로마가 아니며, 이탈리아와도 별개의 국가입니다. 하지만 교황이 살고 있는 이 시국은 행정구역상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로마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로마에 온 사람은 이 카톨릭 수도를 반드시 보고 가게 되어 있죠.
로마 시는 테베레 강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뉘는데 바티칸은 강 건너, 즉 테베레 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테르미니 역에서 로마 관광을 시작한 저는 악명 높은 64번 버스를 타고 테베레 강을 건너 바티칸으로 갔는데, 소매치기가 많은 걸로 유명한 그 버스는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가방만 잘 붙들고 있으면 큰 염려할 필요는 없었죠.
테베레 강은 넓은 한강을 늘 보면서 사는 저에겐 개천 정도로 느껴질 만큼 작은 강이었습니다. 하지만 버스가 바티칸에 진입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우리 말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은 감탄의 환호성을 올리기에 충분했죠. 카톨릭 본산인 교회답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길이 186미터)인 산 피에트로는 베르니니가 설계하고 열주가 있는 회랑으로 둘러싼 넓은 광장 때문에 더욱 웅장하게 보입니다. 왼쪽은 광장을 위에서 본 모습인데 열쇠 구멍을 닮았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실제로 성 베드로는 예수의 첫번째 제자이자 초대 교황으로서 천국의 열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미술에서 베드로는 커다란 열쇠를 갖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광장의 열쇠 구멍 모양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한편 광장 설계자 베르니니는 이 타원형 열주를 ‘(신자들을) 안아주는 어머니 교회의 팔’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열주랑(Colonnade)은 네 줄의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지붕이 덮여 있으며 위에는 성인들의 조각상이 놓여 있습니다. 140명에 이르는 이 성인들의 조각상은 당연히 여러 명의 조각가들이 참여하여 완성시켰는데 재미있게도 광장에서 보이지 않는 뒷면은 대충 다듬어 놓은 상태입니다. 뒷면까지 다듬기엔 시간이 부족했나보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서 있습니다. 어쩐지 거대한 해시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로마에서 포교 활동을 하던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형으로 처형당해 64년 처형당한 곳 근처의 공동묘지에 안치되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 대성당이 있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네로의 경기장이 있던 곳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베드로의 무덤 위에 교회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려 324년에 첫번째 교회가 건설되었고 15세기 중반 교회를 재건하기로 하여 많은 교황과 건축가들의 손을 거친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브라만테Donato Bramante, 미켈란젤로, 자코모 델라 포르타, 카를로 마데르노Carlo Maderno(바실리카형으로 설계를 변경하고 파사드를 완성시켰습니다), 베르니니 같은 건축가들이 이 교회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15~17세기에 걸쳐 지어진 교회는 오늘날 보는 것처럼 르네상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다만, 보다 늦게 된 실내는 당연히 바로크 스타일이 압도적입니다.
산 피에트로의 파사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136.5미터 높이의 돔은 넓이에서도 판테온과 맞먹습니다.
교회 내부로 들어가도 엄청난 높이의 천장과 화려함으로 압도당하게 됩니다. 각 교황들의 기념비와 제단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금박과 대리석으로 온통 장식되어 있습니다. 십자형 교회의 교차부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거대한 발다키노Valdachino(닫집)가 서 있습니다. 엄청난 높이의 이 청동 닫집은 바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때의 모습. 사람들과의 크기 비교에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발다키노는 엿가락을 꼰 것 같은 모양의 특이한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는데 이런 모양의 기둥은 솔로몬 기둥이라고 불립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웠다는 전설적인 성전에 이런 형태의 기둥이 쓰여졌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에서 교회 외에 당연히 봐야 할 곳은 박물관입니다. 이곳 역시 이른 아침에 찾는 것이 좋은데(그러니 교회가 아무리 멋있더라도 박물관을 먼저 찾는 것이 현명합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관람객들이 성벽 밖으로 길게 줄을 서기 때문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나선형 계단. 달팽이를 연상시키는 이 계단은 이중으로 되어 하나는 내려오고 하나는 올라오는 계단입니다.
교회가 긴 시간 수집한 유물들이 너무나 많으므로 박물관의 소장품은 방대하며 분야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하루에 이 모든걸 다 보려고 하는 것은 과욕이죠. 바람직한 방법은 관심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품들이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도 한나절이 꼬박 걸렸죠.
박물관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이 장식한 네 개의 방들,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그 외의 거장들이 그린 프레스코로 가득한 시스티나 예배당Capella Sistina일 것입니다. 라파엘로의 프레스코로 유명한 방들은 교황 율리루스 2세Julius II의 사저로 쓰였던 방들입니다. 세냐투라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은 특히 ‘아테네 학당’으로 유명한데, 그 그림은 워낙 유명해 많이들 보셨을 테니, 이번엔 다른 작품, ‘성 베드로의 구출’을 보도록 하죠.
그림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천사가 구출하는 내용입니다. 재미있게도 한 화면에 사건의 전후를 나타내는 내용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중앙의 격자 창살이 두드러지는 감옥에서는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풀어주려 하고 있고 좌우는 각각 혼란에 빠진 병사들과 천사의 인도를 받는 베드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티칸 궁전의 중앙 예배당이며 얼마 전 교황 서거 후 보신 것처럼 차기 교황을 뽑는 비밀 회의,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장소인 만큼 이곳의 넓은 벽과 천장은 온통 프레스코로 가득 채워져 보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특히 제게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제단화, ‘최후의 심판’이었습니다. 이 그림 역시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프린트된 것을 보는 것과 실제의 그림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일단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화면에 가득한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부분. 중앙에 징벌을 내리려는 듯 손을 든 예수가 있고 그 뒤에 마리아, 그리고 주변에 여러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 중 자신의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는 인물이 성 바르톨로메오San Bartholomeo인데 가죽의 얼굴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예수가 운동을 지나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모든 사람을 심판하려면 그만한 체력이 필요할지도...
천장화 중 리비아의 시빌. 반들거리는 머리와 피스텔톤의 스커트, 황금빛 가운이 인상적인 이 인물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같은 근육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여성을 그릴 때조차 남자를 모델로 했기 때문이랍니다.
이 화가가 그린 천장 또한 굉장했는데, 제가 갔을 때는 몇 년에 걸친 복구 작업이 끝난 뒤여서 호화찬란한 그림의 색채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이 걸작품들은 그동안 연기 그을음에 싸여 상당히 채도가 낮아 보였고, 미술가 본래의 의도가 그랬던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 작업에 의해 본 색깔을 찾은 듯 했습니다.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2월 2일 나는 시스티나 성당의 성촉절에 가 보았다. 그러나 곧 심히 불쾌해져서 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나와버렸다. 왜냐하면 삼백년 전부터 이곳의 훌륭한 그림들을 연기로 그을리는 것은 이 촛불이고, 성스러운 파렴치를 가지고 유일무이한 예술의 태양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해마다 그 빛을 탁하게 해서 끝내는 암흑 속으로 묻어버리는 것은 바로 이 향의 연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기행> 괴테 저, 민음사 2004년)
<창세기>중 어둠과 빛을 나누고 있는 야훼. 이누디(별 의미 없이 들어가 있는 남자 누드들)로 둘러싸인 하느님의 이 고운 핑크색 옷은 참 뜻밖이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복원 작업을 마음에 들지 않아한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스모키한 색조를 띈 그림에 익숙해진 일부 비평가들은 복구된 그림의 색조를 심히 마음에 안 들어하기도 했지만 보석 같은 색상을 선호한 그 시대의 취향이나, 미켈란젤로가 그린 다른 그림, 이를테면 보통 도니 톤도Doni Tondo라고 불리는 ‘성가족’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현재의 색상이 원래와 더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양쪽 벽에도 페루지노Perugino, 보티첼리botticelli, 기를란다이오Ghirlandaio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미켈란젤로의 압도적인 그림들 틈에서 덜 주목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본 성. 다리 위에는 베르니니의 천사 조각들이 서 있고 성 꼭대기에도 거대한 청동 천사가 있습니다.
바티칸에는 또 카스텔 산탄젤로Castel Sant’Angelo(천사의 성)이라고 불리는 요새가 있습니다.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건설된 이 둥근 요새는 바티칸 궁전과 연결되어 교황의 피신처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로마 약탈의 시기에 클레멘스 7세가 이곳에 피해 있었는데, 당시 이 메디치 교황을 따라 로마에 와 있었던 피렌체의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가 그의 흥미로운 자서전에서 그때의 상황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 다소 허풍스럽고 자의식 가득한 조각가는 성을 지키는 데에 자신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증언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 더 보면서 로마 편을 마치고 다음엔 토스카나의 시에나를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시대의 조각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그러나 최근 미켈란젤로가 위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진위야 어떻든 이 군상은 발견 당시부터 많은 논쟁을 일으켰던 명작임에 틀림 없습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쿠폴라를 안에서 본 모습. 성당 안에서 이 돔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엘리베이터로 돔 입구까지 올라가서 그 위로는 이중으로 된 돔의 안쪽과 바깥쪽 껍질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에 난 계단을 걸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올라갈까 하다가 엘리베이터 줄도 너무 길고 다리도 아파서 포기했는데 전망대에서 보는 로마 시가가 아주 멋지다니 다음에 로마 갈 기회가 되면 한번 올라가 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들어가 오른쪽을 보면 이 아름다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교회의 다름 조각품들과 달리 이 걸작은 유리로 보호되고 난간으로 다시 이중 보호되고 있습니다. 1972년에 손상을 입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자세히 살펴 볼 수 없는 게 유감이었죠. 하지만 잘 연마되어 고도의 광택을 지닌 이 작품은 참 아름다웠고, 세월을 잊은 성모의 얼굴은 모든 마돈나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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