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19. 18:57ㆍ나의자료실
이번에 가 볼 도시는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인데요, 북부의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이자 패션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죠.
CLUBS
밀란 Associazione Calcio Milan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AC 밀란으로 불리는 밀란은 세리에A를 대표하는 클럽 중 하나로 지난 세기 말에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리그 우승은 17회로 두 개의 별을 단 유벤투스에 뒤지지만 역시 밀란의 자랑은 7개에 이르는 빅이어 트로피죠.
밀라노라는 이탈리아 이름 대신 ‘밀란’이라는 영어식 이름을 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클럽도 영국인들이 설립한 크리켓 클럽에서 1899년에 시작되었는데요, 1901년 첫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커리어를 쌓아 나가기 시작합니다. 1906년과 7년 다시 우승한 이후 팀은 1908년에 분열을 겪게 됩니다. 외국인 선수들을 클럽에 받아들이는 문제로 인한 내분으로 결국 밀라노에는 또 하나의 축구팀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테르죠. 어쨌든 이 사건은 팀에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어 50-51시즌에 다시 스쿠데토를 차지하게 되기까지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게 됩니다.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4회 우승을 더하면서 명문으로 올라선 밀란은 62-63시즌 팀 최초로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을 따내게 되죠. 70년대에도 밀란은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80년에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팀 최초의 세리에B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다음 시즌에 다시 세리에A로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성적 부진으로 다시 B로 강등되는 등 80년대 초반은 클럽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었죠. 이러한 상황은 1986년 미디어 재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팀을 인수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오렌지 삼총사(굴리트, 반 바스텐, 레이카르트)’로 대변되는 8-90년대 밀란의 황금기는 베를루스코니의 자금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었죠. 어쨌든 이 기간 동안 밀란은 6번의 스쿠데토, 3개의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획득해 ‘밀란 제너레이션’이라고 불린 최고의 시기를 구가했습니다.
06-07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밀란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시기(98-99시즌에 리그 우승하긴 했지만)를 지내고 2002년 새로 부임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02-03시즌 챔스 우승, 03-04시즌 스쿠데토, 06-07시즌의 챔스 우승으로 밀란을 국제 대회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클럽이 되게 한 시기이기도 하죠. 현재의 밀란은 다시금 조금씩 가라앉고 있는 중인데 사실상 이러한 슬럼프는 빅이어를 차지한 06-07시즌부터 우려된 바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세대교체가 원활하지 않으면서 팀이 삐걱거리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현재 밀란의 가장 큰 과제는 눈앞의 성적보다는 리빌딩이라는 것이죠.
잘 알려진 대로, 밀란은 빨강색과 검은색 줄무늬 옷을 입기 때문에 로쏘네리Rossoneri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인테르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인테르나치오날레, 줄여서 인테르라고 불리는 이 팀은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나라에서만 인터 밀란이라는 좀 어색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편한 대로 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인터 밀란’은 암만 봐도 어색하네요.
어쨌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 팀은 밀란에서 분리되어 1908년에 창단되었습니다. 창단 후 1910년에 스쿠데토를 획득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했지만 20년대 말 파시스트 정권이 외국인 선수들을 이탈리아에서 추방시키는 정책을 펴고 밀라네제 우니오네 스포르티바Milanese Unione Sportiva와 강제 합병시키게 됩니다. 합병된 팀은 암브로시아나Ambrosiana SS 밀라노라고 불렸고 29년에는 다시 AS 암브로시아나로 바뀌었지만 팬들은 여전히 인테르라는 이름을 고수했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 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한 암브로시아나는 2차대전이 끝나고 무솔리니가 물러나자 45년 마침내 인테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됩니다. 54년에 안젤로 모라티Angelo Moratti(현 구단주 마씨모 모라티의 아버지)가 구단주가 되면서 팀은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라고 부르는 시기를 맞습니다. 60년대 초에 인테르가 영입한 엘레니오 에레라Helenio Herrera 감독은 이른바 ‘카테나치오Catenaccio’라고 불리는 유명한 수비 전술을 유행시키면서 세 개의 스쿠데토, 그리고 두 개의 빅이어를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7-80년대를 통해 세 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중반까지 스쿠데토를 차지하지 못했고 90년대를 통해 UEFA컵 3회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호나우도나 비에리 같은 수퍼스타들을 영입하면서 상당한 지출을 감행한 클럽에게나 팬들에게나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라고는 볼 수 없었죠.
2009년 17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한 인테르 선수들
인테르가 부진의 늪을 빠져 나오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 축구계를 강타한 2006년의 칼치오폴리 스캔들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습니다. 1, 2위를 차지했던 유벤투스와 밀란이 모두 징계를 당하면서 인테르는 스쿠데토 차지했고 이후 지난 시즌까지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뤄냈죠. 그러나 스쿠데토에도 불구하고 인테르는 지난 시즌 무링요 감독을 영입했는데 그것은 이 팀이 얼마나 챔피언스 리그를 열망하는가를 나타낸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세리에A 우승이 유력해 보이지만 과연 유럽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인테르는 암브로시아나로 불렸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푸른색과 검은색 줄무늬의 저지를 입어 왔습니다. 그래서 보통 네라쭈리Nerazzurri로 불리죠. 암브로시아나는 밀라노의 기와 같은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저지를 입었는데 지난해 100주년 기념으로 어웨이에서 이 붉은 십자가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습니다.
산 시로San Siro/주세페 메아차Giuseppe Meazza
밀라노의 두 팀이 쓰는 경기장은 같은 경기장이지만 이름이 두 개입니다. 정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이지만 보통, 그리고 특히 밀라니스타들은 산 시로라고 부르죠. 밀라노의 산 시로 지역에 있어서 이렇게 불렸는데(원래 이름이 누오보 스타디오 칼치스티코 산 시로Nuovo Stadio Calciostico San Siro였습니다) 1980년에 인테르의 레전드인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꿨습니다. 메아차는 밀란에서도 잠깐 뛰었다고 하지만 인테르에서의 빛나는 업적에 비하면 밀란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기 때문에 밀란 팬들은 특히 ‘산 시로’를 고집하죠.
1926년 완공된 구장은 원래 밀란의 소유였지만 1947년부터 인테르가 빌려 쓰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두 팀이 함께 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시의 소유이고 양 밀란 팀 모두 새 구장을 짓기 원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구장은 여러 번의 증축, 특히 1990년의 이탈리아 월드컵을 위한 대규모 증축으로 8만 5천 여 명을 수용하는, UEFA가 규정하는 5성급 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람석을 덮는 지붕이 잔디의 생육에 악영향을 끼쳐 잔디를 자주 갈아 줘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운 피치로 인해 선수들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구장이기도 합니다.
밀라노의 두 팀이 벌이는 더비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라고 불리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시의 상징인 두오모 꼭대기에 있는, 마돈니나라고 불리는 성모상 때문이라고 해요. 명문 팀간의 더비이지만 밀라노의 더비는 폭력적인 사건은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2005년 4월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는 연속되는 더비전 패배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인테르 팬들이 경기장으로 물건들을 투척하고 급기야는 디다 골키퍼가 화염에 맞는 사고가 일어나 최악의 더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밀라노Milano
밀라노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주도로 이탈리아의 산업을 주도하는 대도시입니다. 롬바르디아는 스위스와의 국경지역 알프스 기슭의 코모Como와 마조레Maggiore, 두 호수를 지나면 포 강 유역의 넓게 펼쳐진 평원이 나타나는 지역으로 이러한 평탄한 지형은 롬바르디아의 농업과 공업을 발전시키는 조건이 되어 왔습니다.
알프스 산으로 이어지는 구릉 지대에 자리잡은 코모 호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갖춘 롬바르디아의 휴양지 중 하나입니다. 길고 세 갈래로 갈라진 호수는 빙하 작용으로 형성된 것으로 호수의 남쪽에는 코모, 레코Lecco 같은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들이 있습니다.
밀라노라는 이름은 BC400년경 이 곳에 살았던 켈트족에 속하는 인수브레Insubre 족의 도시 메디올라눔Mediolanum으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메디올라눔은 BC222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여러 무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는 이점 때문에 메디올라눔은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되었고 이후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게 되었을 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서로마의 수도가 되었습니다(293년). 이 시기 도시의 중요성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칙령(밀라노 칙령)을 이곳에서 선언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이 4세기(379년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산탐브로조Sant’Ambrogio는 밀라노의 수호 성인 암브로조의 이름이 붙어 있는 오래된 교회입니다. 암브로조는 4세기에 밀라노의 주교였던 인물로 두오모(물론 암브로조 시대에 지어진 두오모는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를 비롯한 많은 교회들을 지어 밀라노의 도시 계획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 교회도 그가 짓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진에서 보듯이 현재의 모습은 주로 로마네스크로, 10세기의 것입니다. 사진은 안뜰 회랑의 모습인데 파사드 쪽으로는 양옆에 종탑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탑의 모양과 높이가 다르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서로마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고 바바리안이라고 불리던 게르만족의 이동이 본격화하면서 402년 밀라노는 서고트족에게 점령당합니다. 이렇게 되자 서로마 제국은 수도를 라벤나Ravenna로 옮기게 되고 이후 밀라노는 훈족, 동고트족, 롬바르드Lombard(혹은 롱고바르드Longobard)족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이 중 롬바르드족은 이 지역(롬바르디아)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게 되죠. 774년 밀라노는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에 항복하고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황제에게 충성하지는 않았던 이 지역의 도시들은 많은 경우 독일 황제들과 긴장 관계에 있었죠. 이런 반항적인 도시들을 평정하고자 했던 프리드리히Friedrich1세-바르바로사Barbarossa(‘붉은 수염’)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의 전쟁으로 밀라노는 1162년 파괴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독립을 열망하게 된 롬바르디아 도시들은 동맹(레가 롬바르다Lega Lombarda)을 결성했고 1183년 밀라노는 공국이 되면서 자치권을 획득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자치권의 획득이 평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는데 도시의 권력을 놓고 유력 가문들의 다툼이 13세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밀라노의 상징인 두오모는 14세기 지안갈레아초 비스콘티의 지시로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완공까지는 5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높이가 157m, 너비가 92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교회이자 이탈리아 유일의 진정한 고딕 양식 교회라고 일컬어지는데(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탈리아인들은 이 수직적이고 뾰족뾰족한, 알프스 이북 지방의 기원을 가진 양식을 ‘고트족의 양식처럼 야만스럽다’는 의미에서 고딕이라고 불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사드의 아랫부분은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줍니다. 수많은 첨탑과 조각상들, 섬세한 트레이서리로 장식된 건물은 그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감탄을 불러 일으키죠.
결국 비스콘티Visconti가가 권력을 장악했고 14세기 말에 지안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가 밀라노 공작이 되어 이 가문은 공작으로서 15세기까지 밀라노를 지배했지만 1447년에 필리포 마리아Filippo Maria 비스콘티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밀라노는 잠깐 동안 공화정 체제를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1450년 프란체스코 스포르차Francesco Sforza가 밀라노를 점령하고 스포르차 가는 1500년 루도비코 일 모로Ludovico il Moro가 프랑스의 루이 12세에게 패배할 때까지 밀라노를 다스리게 됩니다.
밀라노 공작들의 요새이자 궁전이었던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Castello Sforcesco. 원래 이 자리에는 비스콘티의 성이 있었지만 15세기 중반 헐리고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다시 자신의 성을 지었습니다. 둥근 방어용 탑들이 있는 성은 외부에서 볼 때는 위압적이고 요새의 느낌을 많이 주지만 많은 지중해 지방 건물들이 그렇듯이 내부는 안뜰들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보다 개방적으로 느껴지죠. 궁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됩니다.
이후 밀라노는 다른 이탈리아 북부 지역들처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가 간의 권력 다툼의 장이 되었고 1796년에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었다가 1815년 다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밀라노는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던 시기에 오페라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인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보통 라 스칼라La Scala라고 불립니다)는 1778년 개관했습니다. 벨리니Bellini, 도니제티Donizetti, 로씨니Rossini, 베르디Verdi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초연되었고 현재까지도 이곳에서는 최고의 오페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밀라노는 사르데냐 왕국과 힘을 합쳐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통일 이탈리아에서 밀라노는 당시 한창 건설되던 철도의 북부 중심지가 되었고 곧 이탈리아의 산업 금융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기에 지어진 쇼핑 센터인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Galleria Vittorio Emmanuele II. 이 센터는 건축가인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가 준공되기 전 지붕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로 시작했지만 오늘날까지 세련된 상점들과 유명한 레스토랑들로 밀라노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건물들은 이전 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철골 구조에 유리로 씌워진 지붕은 20세기 건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닥의 다채로운 모자이크로도 유명하죠.
하지만 1919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검은 여단을 창설하고 밀라노가 파시스트 운동의 중심이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밀라노는 영국과 미국이 행한 폭격의 주 목표가 되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밀라노는 5-60년대 이탈리아 경제 기적의 중심 도시가 되었습니다. 현재 밀라노는 주식시장이 있는 이탈리아의 금융 중심지이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섬유 산업, 자동차, 화학, 기계 공업 등의 산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는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때문에 더욱 유명합니다. 건물은 15세기의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눈에 띄는 후미부는 브라만테가 설계한 것인데 다면체 드럼이 어쩐지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그라치에의 식당 벽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유명한 만큼이나 훼손이 심한데 그것은 세월의 탓이나 보존의 탓만은 아닙니다. 어제나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는 걸 좋아한 레오나르도는 젖은 회벽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벽체와 안료를 단단히 결합시키는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 대신 마른 벽에 템페라로 이 그림을 그렸고 이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안료가 벽에서 들뜨는 결과를 가져와 오늘날과 같이 만지면 부서져 내릴 듯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밀라노의 가장 유명한 갤러리인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Pinacoteca di Brera를 보도록 하죠. 17세기의 팔라초 디 브레라에 있는 이 미술관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회화와 16,7세기의 네덜란드, 플랑드르 회화를 아우르는 컬렉션을 갖추고 있습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라파엘로, 만테냐, 벨리니, 틴토레토, 베로네세 같은 화가들의 작품 뿐 아니라 모딜리아니, 하예츠 같은 보다 후대의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내부 회랑의 중심에 있는 청동상은 카노바의 작품입니다.
롬바르디아 지역에서는 쌀이 많이 생산되는데요, 그래서 파스타만큼이나 쌀 요리인 리조토를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북부에서는 이탈리아 남부와 달리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을 많이 쓰지 않고 버터를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죠. 리조토 알라 밀라네세Risotto alla Milanese는 밀라노의 대표적인 요리로 쌀과 화이트 와인, 사프란과 파르메자노 레자노로 만듭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요리는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Cotoletta alla Milanese인데 이것은 송아지고기 커틀렛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들어왔다고도 하고 반대로 오스트리아로 전파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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