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3. 15:54ㆍ기억하고 싶은 시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 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는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 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積善)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1818년 러시아 아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육군대위로 퇴역하고 스파스코로 이주함에 따라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이 시골마을에서 보냈다.
1827년 가족 전체가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열아홉 살 때 첫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유럽이야말로 참된 지식의 원천을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베를린 대학에 입학했지만,
2년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모스크바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1843년 스페인 출신
가수 폴리나 가르시아 비아르도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와의 관계는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투르게네프는 비아르도의 유럽 순회 공연을 쫓아다녔고, 꽤 오랫동안 파리에서
그녀는 물론 그녀의 남편과도 '가족의 친구’로서 함께 지냈다.
1856년 이후 대부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은 첫 번째 러시아 작가가 되었다.
그는 파리의 문학 서클에서 유명 인사였고, 플로베르와 공쿠르 형제가 그의 친구였으며,
옥스퍼드 대학은 그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다.
《루딘》, 《귀족의 보금자리》, 《전야》, 《아버지와 아들》, 《연기》, 《처녀지》는 1830년대부터
1870년대 사이 러시아인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문학 에세이 및 회고록 이외에도 희곡, 단편소설,
중편소설 등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바로 절정기에 쓴
《첫사랑》이다. 투르게네프는 1883년 파리에서 병사하여 러시아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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