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21. 21:44ㆍ서울
더운 여름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는 답답해서 박물관을 가서 찬찬히 우리나라의 보물들과 역사를 살펴보기로 했다.
며칠은 걸려야 되지않을까?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국보 86호 경천사 10층석탑이 우뚝서서 눈낄을 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 중앙박물관. 한국 박물관의 시초는 1909년에 개관한 창경궁 이왕가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1915년 12월 1일 경복궁 내에 총독부박물관을 개관했는데,
이 박물관이 해방 이후 1945년 12월 3일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 인정되었다.
6·25전쟁 때 소장품이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남산 민족박물관, 덕수궁 석조전,
구 중앙청 건물 등으로 이전했으며,
2005년 10월 2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건립된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관했다.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유물은 14만여 점에 달한다.
수박 겉핧기로 둘러봤던 모든곳을 아주 천천히 둘러 볼 계획이다.
역사발해관으로 들어갔다. 광복절이라 사람들이 상상외로 붐볐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698년 대조영은 말갈족들을 거느리고 동만주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당은 705년 발해를 인정했고 713년에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발해가 영토확장사업을 벌이자 신라는 721년 강릉 이북에 장성을 쌓아 대비했다.
732~733년에 발해와 당·신라의 긴장관계가 계속되었으나 문왕의 평화외교로 해소되었다.
문왕은 대내적으로는 체제정비에 힘쓰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적 교역의 증대에 관심을 기울여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도모하였다.
818년 선왕은 말갈세력, 흑수말갈에 대한 통제력도 장악했으며, 소고구려를 영역에 포함시키면서 대국으로 성장했다.
선왕 이후 점차 쇠퇴를 보이다가 9세기 후반부터 성장한 거란은 925년 발해를 공격해 발해를 멸망시켰다. - 다음 백과 -
발해관을 들어서며 바로 보이는 치미와용마루
치미는 지붕 용마루의 양쪽 끝에 올려 놓는 장식용 기와입니다. 발해의 치미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건축물의 기단 장식으로 쓰인 용머리상
기와.
삼채란 납으로 만든 유약에 철·구리 등을 섞어 초록·노랑·갈색 등 세 가지 색깔이 함께 나오는 기법이다.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하여 당삼채(唐三彩)가 널리 알려졌지만 발해삼채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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