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2021. 7. 6. 17:25서울

 

 

우리나라의 궁궐 위치

 

2층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로 전시된 ‘조선의 국왕’실과 조선 5대 궁궐의 역사와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실이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에서 국왕은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초월적 존재’로 정의되었다. 국왕은 즉위부터 사후에 이르기까지 각종 상징물 속에 둘러싸여 의례를 행하면서 지존의 권위와 위엄을 표현하였으며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였다. 국왕이 행정과 각종 의례를 위해 사용한 어보御寶 및 왕이 자리한 곳에 항상 펼쳐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국왕을 상징한 대표적 기물이다.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집권화된 왕조 국가로 왕은 입법·사법·행정 등을 망라하여 한 나라를 통치하는 무한한 책임과

권한을 지녔으며, 국왕의 삶은 바로 왕조의 역사와 직결되었다. 이에 따라 국왕의 공식 일정과 행사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조보감國朝寶鑑』,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에 세세하게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왕조는 인仁과 덕德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국왕을 도와 유교적 문치주의 국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가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집현전集賢殿, 규장각奎章閣 등의 학술 연구기관을 두었다.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317호이다.

            현재 어진의 진본은 전라북도 전주시 경기전(慶基殿)의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모사본이 국립전주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보물 제932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10㎝, 가로 68㎝.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조는 재세(在世) 때 매 10년마다 일곱 차례나 초상화를 그려서 도합 12본의 어진을 제작하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51세 때와 21세 때(연잉군)의 초상화 2점만이 전해올 뿐이다.

제작년도: 2014년

1928년에 김은호가 그린 27대 순종황제 어진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여 제작한 모사도이다. 유물에 남아있는 부분을 토대로 소실된 부분에 대한 디지털 복원 작업을 더해 초본을 제작하였다. 얼굴의 소실된 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순종 어진 초본〉과 1916년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의 흑백사진을 활용하여 복원하였고, 곤룡포의 용보(龍補)는 세종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황룡포의 오조룡보를 참고하였다. 유물 자체에 대한 상태조사 결과에 더해, 관련 문헌자료를 검토하여 원본과 최대한 가깝게 채색하고 장황(粧䌙)하여 마무리하였다.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  경회루는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이 방문 했을 때

연회를 열기 위해 사용하던 장소이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구리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봇에 넣었다고 한다.

1997년 11월 경복궁 경회루 연못 준설작업 중 경회루 북쪽 하향정 앞 연못 바닥에서 청동용이 발견되었다.

 

                   청기와 용머리 장식

 

토수는 목조 건물의 지붕 추녀 끝에 끼워 비바람에 목재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한 부재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청기와 용머리 토수 두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모두 창덕궁 선정전 지붕을 장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토수의 크기는 각각 가로 20cm 세로 33cm 높이22cm다.

선정전은 조선의 국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건물이었으며 1828~183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 전체 모습을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에서 청기와와 용머리 토수를 얹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임금이 조회를 하던 정전과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만이 청기와 건물이었으며 청기와 용머리 토수는 왕의 권력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장식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건축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규장각은 조선 정조 즉위년(1776)에 지은 왕실 도서관으로 역대 임금의 글이나 글씨를 보관하고,

많은 책을 편찬·인쇄·반포하는 일을 하며 나랏일을 연구하던 기관이다.
정조는 수시로 규장각 업무를 맡은 관리들과 정책을 협의하며 규장각 건물 옆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발간된 책을

모아 두는 서고를 별도로 지어 나라 안팎에서 발행된 서적들을 모아 정리 보관하였는데,

총 3만 여권에 달하는 현재 규장각 도서(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관리)는 이 시기에 수집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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