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고택

2023. 6. 20. 15:12우리나라 이곳저곳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가 되어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으며,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여 밝혀냈다.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등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헌종 2년(1836) 성균관 대사성에 올랐으며 윤상도의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헌종 6년(1840)에

제주도로 9년간 유배되었다가 헌종 말년에 귀양에서 풀렸다. 제주도에 지내면서 그 동안 연구해 온 추사체를 완성하였다.철종 2년(1851)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일에 연루되어 또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만에 풀려 돌아왔다.

그 뒤 아버지 묘소가 있는 과천에 지내면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을 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우물 :  가문 대대로 이용해온 우물아다. 우물에는 김정희 출생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민규호가 쓴 " 완당김공소전 "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지  24개월만에 김정희를 낳았다고 한다.

                          그무렵 갑자기 우물이 마르고 뒷산인 팔봉산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태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다시 생기를 되찿았다는 것이다.

 

                               추사의 옛 집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묘는 2단으로 정지한 후 안치되었다.

                                           묘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세한도는1844년 완당나이 59세 때, 제주도에서 귀향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원당 생에 최고의 명작이다.

 

 

 

추사기념관은 김정희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 전시하여 추사선생의 다양한 면모의 그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되었다.

 

 

               

 

 

저서로는 완당집, 예당금속과안록,실사구시설, 완당척독,담연재시고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넓은 학문과 천부의 재질을 바탕으로 한 추사의 예술은 시, 서 , 화, 전각 등에도 뛰어났으며

서도는 추사체라는 독자일문을 열어 서예사상 지고의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묵란도 , 묵죽도, 불이선란과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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