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30. 15:29ㆍ영화, 연극
핀란드 출신의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버거운 상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내일'을 기다리는 가슴 설레는 마음보단, 당장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목적만 존재한다. 이들은 조금의 채워짐도 없이 하루하루를 소진해내는 것이다.
영화는 우울하고 스산하다.
줄거리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오프닝 장면은 띡-하고 바코드를 찍는 직원이 서있는 마트의 계산대다. 물품들로 꽉 들어찬 계산대는 금방이라도 버겁다고 아우성칠 것만 같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챙겼다가 마트에서 해고된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술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해내지 못하는 공장 노동자 홀라파(주시 바타넨)가 딱 그러한 상태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퇴근한 안사의 집 안에는 말소리 대신 지직거리는 형광등 소리와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는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의 전쟁을 보도하는 뉴스만이 가득하다. 그마저도 실직으로
생계에 어려움이 생기자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라디오의 코드를 뽑아 정적만이 자리하고 있다.
홀라파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돌아온 숙소에서 홀라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가 보도되는
라디오를 배경음 삼아 잡지를 읽을 뿐이다. 이들에겐 전쟁과 같은 외적인 상황을 집중해서 들을 여유란 없다.
뉴스에서 음악으로 채널을 돌리는 두 사람은 소리 없이 고독하고도 외로운, 삶이란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23년, 무미건조한 헬싱키를 유랑하는 외로운 영혼 '안사'와 '홀라파'는 어느날 그저 그런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지인을 따라간 클럽 바에서 안사와 홀라파는 서로를 알아보고 눈빛을 주고 받는다.
어느새 상대를 탐색하는 눈동자는 묘한 생기가 감돈다. 중요한 것은 안사와 홀라파가 정열을 불태우는 청년도, 초연하고 담담한 노년도 아닌 중년이라는 경계면에 서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감정의 씨앗이 발화되는 것에 조심스러움을 느끼는 두 사람은 짧은 눈맞춤을 뒤로 한채 또다시 각자의 일상을 보낸다.
차를 마시자는 홀리파의 제안에 순순히 안사는 응한다.
서로의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한 채 유일하게 받아 적은
전화번호마저 잃어버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가까워지려 하면 멀어지게 된다.
연락할 길이 끊어진 홀리파는 둘이 갔던 영화관 앞에서 무작정 기다린다.기다리던 어느날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하도 찾아 다녀서 내신발이 다 닳았다고 홀라파는 능청을 떤다.안사가 홀리파를 저녁에 초대한다. 술을 많이 먹는 술꾼은 싫다고 하자 홀리파도 잔소리쟁이는 싫다고 나가 버려 또 다시 헤어진다. 다시 둘은 생계를 위해 노동일을 한다.
라디오를 틀면 우크라이나 사상자가 몇명이다 라는 우울한 방송만 나오고 체널을 돌려 음악을 듣는다 .
영화 음악의 대사도 음악이 그들의 심장을 대변하듯 많이 삽입되었다.
결국은 홀라파가 술을 끊고 안사에게 전화를 한다. 저녁 초대 받아 가는길에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간다.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 병원으로 가서 재회한다.
다시 둘은 부축해서 나란히 걸어 간다.
.80분가량의 러닝타임 안에서 안사와 홀라파는 단단하게 연결되지 않은
관계의 끈으로 하여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서로의 이름을 묻고, 안부를 걱정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행위를 통해 안사와 홀라파는 '내일'을 되찾았고 또 나아갈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동행한다. 아마 안사와 홀라파는 매일 아침 떠오르고 지는 태양을 보며 하루의 일과를 나눌 것이다.
안사의 반려견 '채플린'과 함께 말이다
수상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