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6. 23:47ㆍ그림
이외수님의 글과 그림
보석같은 싯구절 모아
詩목걸이 만들어서
그대 마음 한 가운데 걸어주고 싶어라
그대여
우울 할 때에는 詩목걸이 음미하리라
비록 절름거리며 어두운 세상을 걸어가고 있지만요.
허기진 영혼 천길 벼랑 끝에 이르러도
이제 절망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겨우내 자신의 모습을 흔적없이 지워 버린 민들레도
한 모금의 햇빛으로 저토록 눈부신 꽃을 피우는데요.
제게로 오는 봄 또한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구제불능이지요.
아무리 세공을 해 보아도 보석이
되지는 않아요.
다만 햇살 따가운 봄날에 그대 집
마당가로만 데려다 주세요.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종일토록 흐르는 강물소리.
누구의 영혼을 적시는지 가르쳐 드리겠어요.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 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이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그리운 이름들은 모두 구름 걸린 언덕에서
키 큰 미루나무로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들리시나요.
그대 이름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
아무리 정신이 고결한 도공이라도
영원히 깨지지 않는 도자기를 만든 적이 없듯이
아무리 영혼이 순결한 사랑이라도
언젠가는 금이 가고 마는 줄 알면서도
칸나꽃 놀빛으로 타오르는 저녁나절
그대는 무슨 일로
소리죽여 울고 있나요.
유년의 여름날 초록풀밭에 누우면 생시에도 날아가는 새들
의 영혼이 보였다.
그 시절에는 날마다 벽에다 금을 그으며
내 키를 재 보았다.
그러나 내 키는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단지 날아가는 새들의 영혼만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지난 밤 그대에게 보내려고 써 둔 엽서.
아침에 다시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성냥불을 붙였다.
끝까지 타지 않고 남은 글자들. 외. 로. 움.
마음을 비우면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을
누가 믿으랴 젊은이들은
모두 구정물처럼 혼탁해진 도시로 떠나 버리고
마을 전체가 절간처럼
적요하다
기울어지는 여름풍경 속에서 하루종일
허기진 그리움으로 매미들이 울고 있다
평상에 홀로 앉아 낮술을 마시는 노인의 모습
이따금 놀빛 얼굴로 바라보는 먼 하늘이 청명하다
인생이 깊어지면 절로
구름의 거처를 묻지 않나니
누가 화답할 수 있으랴
부처가 연꽃을 들어 보이지 않아도
노인이 먼저 입 가에 떠올리는 저 미소
가을밤 산사 대웅전 위에 보름달 떠오른다
소슬한 바람 한 자락에도 풍경소리 맑아라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
없이 낙엽도 흩날리고 때로는 달빛 속에서 속절없이 부처도 흩날린다
삼라만상이 절로 아름답거늘 다시 무슨
깨우침에 고개를 돌리랴
밤이면 처마 밑에 숨어서 큰스님 법문을 도둑질하던
저 물고기
지금은 보름달 속에 들어앉아 적멸을 보고 있다
저물 녘 마을 어귀서 헤어진 후로
지는 꽃잎 볼적마다 그대 생각
사랑도 저 꽃처럼 시들어 버릴까 두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