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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장생도 / 90.9x72.7, 2008. |
지난 2005년 문화·예술의 메카, 프랑스 파리에서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프랑스 상원 의장으로부터 초청받아 성황리에 전시회를 마친 이한우 화백. 그는 전시회를 통해 작품성과 예술성을 공인받아 일 년 동안 초대된 가장 우수한 외국작가로 선정돼 프랑스 정부가 수여한 ‘문예기사 훈장’을 수상했고,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들다는 대한민국 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비롯해 여섯 차례나 수상했으며, 지난 2000년에는 정부의 보관 문화훈장을, 2009년에는 문화은관훈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50여 년 동안 그림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를 거쳐 세계 미술시장에서 ‘이한우 스타일’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고, 동양 사상이 깃든 ‘산그림’을 통해 서양화의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해냈다. 한국의 전통 산수와 현대적인 요소의 절묘한 조화로 이뤄낸 ‘아름다운 우리강산’이 그 대표작으로 세계 각국의 갤러리로부터 가장 한국적이며 민족의 혼이 깃든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국전이 낳은 한국 화단의 대들보 이한우 화백을 만나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붓과 함께한 50여 년 인생에 대해 들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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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화백. |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선한 바람 내음을 맡으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이한우 화백의 자택을 찾았다. 한적한 오르막길에 2층 한옥으로 지어진 집 앞 마당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텃밭과 한쪽 귀퉁이에 길게 널려있는 빨랫줄이 정겨운 고향집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2층에 마련된 작업실에는 오랜 세월동안 그와 함께해온 손때 묻은 화구들과 사방을 가득 메운 작품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수많은 화가들을 인터뷰 해왔지만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작가는 처음이었다. 그 연유에 대해 묻자 이 화백은 “돈 받고 파는 상업적인 그림만 그린다면 화가로써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후대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늘 그림만 그린다”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더라도 내 작품은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품을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화백은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붓을 드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오랫동안 사용한 탓인지 숨이 죽어 한 가운데가 푹 꺼진 의자에 앉아 종일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반 고흐의 모습과 흡사해보였다.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캔버스에 고향산천의 풍경을 물들이는 이 화백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사하며 심오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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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노틀담 사원이 보이는 풍경 / 162.2x112.1, 2004. |
○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에 이한우 스타일을 정립하다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국내외에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는 10여 년 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끝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제목으로 고요하고 정겨운 한국의 고향 풍경을 소재로 그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지난 2007년 외국 국적을 가진 생존작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상원 의장의 초청을 받아 룩상부르 공원에 위치한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가져 참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참석한 귀빈들 중 크리스티앙 뽕슬레 상원의원은 “파리 시민들과 함께 한국의 산수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한우 화백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했고, 당시 관광공사 파리지사장이었던 진수남 씨는 “우리가 파리에서 1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한 관광 진흥에 큰 몫을 해냈으니 표창이나 감사장을 올려야 겠다”고 밝혔으며, 이 화백의 미술 평론을 맡은 파트리쓰 드라 뻬리에르 미술 평론가는 “이한우와 같은 예술가의 그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평론가에게는 언제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면서 작품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기교에 의해서 한층 가치가 돋보이는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영감에 이끌리듯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은 옛 한국 예술가들에 의해 그려진 자연의 전통적인 표현을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지만 이 주제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현실감 있게 표현된 예술가의 한국적 뿌리나 만물 속에 숨쉬는 기(氣)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놀라운 표현주의적 현대성을 캔버스에 표현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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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우리강산 / 92.7x90.9, 2006. | 서양화가로써 한국도 아닌 유럽에서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 화백은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한국 전통 산수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면서 “서양화는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미술양식으로 진화·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전시회를 다녀봐도 어느 나라의 작가가 그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국의 특성이나 민족성을 느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예술은 창작이 뒷받침 되고 화가의 혼이 깃들어졌을 때 진정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기록하는데 혼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을 소재로 선택한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작가 자신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산수화의 기본인 되는 사람 인(人)자를 바탕으로 산의 형태가 마치 혈관을 이어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5,000년 역사를 이어온 강인한 우리 민족의 정기를 길게 뻗은 나뭇가지로 표현해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회화예술의 새로운 혁명을 일으킨 이 화백의 아름다운 우리강산 연작은 국내 굴지의 모 은행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신문전면 광고를 내며 대중들에게 더 알려지게 됐는데 유명세를 타면서 헤프닝도 있었다. 이화백의 위작이 버젓이 서울의 한 병원 로비에 걸린 것. 지인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자신도 놀랄 만큼 유사하게 그렸던 것. 하지만 색감과 전체적인 화면구성에서는 단연 진품과 차이점이 있었다. 3차색만을 고집해 그림을 그리는 이 화백의 색감 까지는 흉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위작을 그려 수천만 원에 거래한 범인이 나타났고 이 화백은 그림을 받는 즉시 또 다른 경로로 유통될 것을 우려해 그 앞에서 찢어 버렸다고 한다. 당시를 회상하던 이 화백은 “그때는 너무 화가 났지만 그만큼 내 작품이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웃어 넘겼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적인 거래는 미술시장에서 있어서도 안되고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근절돼야 할 행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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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우리강산 / 162x112.1, 2002. |
○ 고향 통영의 향수를 캔버스에 녹여내다 이한우 화백은 1928년 경남 통영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유치원을 다닐 때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당시 57명씩 가득 찬 51개 학급 중에 선발돼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화가의 꿈을 키워온 그에게 고향 통영의 모든 풍경은 그림의 소재가 됐고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동국대에서 교육대학원(미술교육)을 졸업한 후 통영으로 내려가 15년 간 교직생활을 해오며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그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붓과 함께한 50여 년 화업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한다. “그림 그리는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라고... 살아생전에 그림 한 점이라도 더 그리고 싶어 밖에 나가있는 시간도 아깝다고 말하는 이한우 화백은 진정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임이 분명했다. 앞으로도 국내는 물론 해외 전시를 통해 한국전통산수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전념하겠다고 말하는 이한우 화백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한우 화백 약력
1928년 경남 통영 출생
학 력 1948년 경남통영상업고등학교 졸업 1984년 동국대 교육대학원(미술교육) 졸업 2003년 단국대 문화예술최고 경영학부 수학
주요 경력 1973년 한일 미술교류전 - 일본 동경 1980년 국전추천 초대작가전 - 국립현대미술관 1985년 현대 한국대표작가 100인전 - 미술진흥회 1986년 국립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 국립현대미술관 1987년 한국방송공사 60주년 기념 20인 초대전 - 한국방송공사 1988년 88한국미술 올림픽 기념전 - 국립현대미술관 1991년 개인초대전 - LA(한인타운 교민회) - 미국 KTE공개홀 1991년 남북미술 합동전 - 중국 북경 1994년 미국 LA한인타운 20주년 기념초대전 - 미국교민회 1997년 인도정부초청 한국현대회화전 - 인도 국립미술관 1997년 루마니아정부 초대전 - 루마니아 국립미술관 19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