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2. 14:58ㆍ기억하고 싶은 시
학력 ; 하버드대학교 문학 학사
수상 ; 1949년 노벨 문학상
출생 ;1888년9월 ~ 1965년 1월4일 사망
~ 황무지 / 엘리어트(T.S. Eliot)
한번은 쿠마의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1부. 죽은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 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설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곡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은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나오는가?
사람들이여, 너는 말하기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곳엔 해가 쪼여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른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恐怖)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일년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야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야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야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트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를 한벌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이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예요.
이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건 바퀴
이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 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보여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숙을 들여다 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보이는 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삶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이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마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 보면서
언덕을 너머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로스 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츤 자네 밀라에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苗床)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황무지(The Waste Land)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어트가 1922년 출간한 434 줄의 시이다.
이것은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 이 시는 난해함이 지배하는 시로, 문화화 문학에서 넓고, 부조화스럽게 나타나는 풍자와 예언의 전환,
그 분열과 화자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 위치와 시간, 애수적이지만, 으르는 호출 등이 나타나는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현대 문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 유명한 싯구들 중에 첫 행의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손안에 든 먼지만큼이나 공포를 보여주마”(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그리고 마지막 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인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는 유명한 구절들이다.
이 황무지는 생명이 서식할 수 없는 그런 볼모의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생명이 깃들 수 없는 즉, 20세기 서구문명을 볼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로 90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그러한 참혹한 전쟁을 체험한 그는 서구인의 삶 속에서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버린 그런 깊은 절망을 보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한 것이 바로 그 절망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냉정하고도 황폐한 그러한 정신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T.S. 엘리엇은 아주 잔인하고 끔찍한 단어를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삶의 의미를 망각 (정신적인 황무지를 뜻하는 거겠죠) 하고 사는 사람들을 향해 꽁꽁 얼어 붙었던 땅에서 연약한 생명들이 싹 터 오는 것을 봅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생명의 계절인 이 4월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를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 없는 황무지로 비유합니다.
이런 황무지에서는 차라리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겨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4월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땅에 묻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잔인했을 테니까요.
이제 더 이상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닌 라일락 꽃이 피는 아름답고 따뜻한 달이길 아마 엘리엇도 하늘나라에서 기대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