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를 다녀와서...

2010. 5. 16. 11:00우리나라 이곳저곳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 새로 된 고개 등의 뜻으로 새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하고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옛날 에  재를  넘으려면 자고  넘어야 하니  이곳에서  숙박을  하던 곳이라네요.   27년 전(결혼10주년}에  이 곳을 넘었을 때는

아무런  시설이 없이 그저 재를 넘던  "옛길"   그대로 였는데...

 

 

 

 

 

 

 

 

 

 

 

 

 

 

 

 

 

 

 

 

 





바위가  희한한  모습으로 ...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聞慶)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었다. 그래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택리지》에도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과거길

새재는 과거를 보기 위해 선비들이 즐겨 넘던 길로 옛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문경새재는 태종 13년(1413)에 개통되었다. 새재가 열리기 전까지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계립령의 하늘재가 주요 교통로였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세 개의 관문을 따라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약 10km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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