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3. 17:34ㆍ기억하고 싶은 시
어머니와 국수와 시장통
- 박흥식 -
빗물이 치고 비닐막이 등짝으로 펄럭이는 날이다
어머니 냄새는 재봉틀에 치던 기름 같더니
50이 다 되어서도 혼자 사는 불쌍한 놈이라 날더러 말했다
얼마 뒤인지 살아서는 다시 못 볼 것이란 생각을 했다
모가지도 깨끗이 씻고 옷도 다려 입고 전화해 불러내자
전철역 밖으로 빗발이 하염없으니 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시장 골목의 관절염 같은 약국을 지나
어머니 좋아하시는 떡집의 떡이 송이송이 무리 지었다
꽃집 앞에선 꽃들에 취해 채송화씨앗 봉지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한번도 밖에 나와 밥을 사먹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한사코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 불쌍한 어머니와
빗속의 시장통에서 처음으로 마주앉아 국수를 말았다
비좁은 국수집을 돌아나가는 부연 김에 묻혀
찐빵도 파는 집이어서 찐빵도 하나 먹고
만두도 파는 집이어서 만두도 먹고
다시 한 번 더 국수를 먹을 날 있다면 눈보라 치는
구부러진 소나무 아래였으면 하면 눈물이 턱 아래로 흘렀다
빗물에 늘어진 비닐 포장 아래의 뜨듯한 국수와
하얀 종지 속 까만 간장이 무슨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참으로 어색하고 다정하지 못한 채
참으로 오순도순하지 못하고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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