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8. 14:03ㆍ우리나라 이곳저곳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더니 여러군데를 들렀어도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찍 숙소로 들어가 쉬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레일 바이크를 타려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을 못해 전화해서 물어보니 지금 나오면 탈 수 있다고 한다 .
서둘러 궁촌으로 갔다. 궁촌에서 용화까지 5.4km 한 시가 정도 걸린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 일찍이라 아직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멋진 해변을 끼고 달리기도 하고 터널을 달릴때의 아름다운 불빛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즐거웁게
달라게 해주니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승혁이도 재미있다고 좋아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곳이 용화해수욕장이다 작고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정선에서도 타 봤는데 이곳 삼척에서 타는것이 더 즐거움을 안겨준다.
레일 바이크 타는 중간 휴식 하는 곳에 조각상들.
아래 작품은 가족의 사랑이 따스하게 전해져 입가에 웃은이 절로 피어나게 한다.
레일 바이크를 타고 나와서 공양왕릉으로 왔다.
무덤에 떼를 입히느라 그물같은 검은 비닐로 덮혀져 있었다.
무덤앞은 그 흔한 비석 조차 없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을까?
공양왕릉
이 묘가 공양왕의 것이고 그 옆이 두 아들의 묘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은 1392년 7월 이성계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그해 8월 공양군으로 강등된 채 강원도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간성으로 옮겨 집니다. 조선왕조 개국 1년 후인 1394년 3월 14일 공양왕은 왕세자 석(奭)과 둘째왕자 우(瑀)와 함께 삼척(궁촌리)으로 옮겨지고, 이 때 동래현령 김가행(金可行)과 동해안 염장관(소금생산 감독관) 박중질(朴仲質) 등과 함께 삼척 울진지역의 인사들이 공양왕 복위운동을 벌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양왕을 추앙하는 고려의 유생들과 군사들이 각지에서 궁촌리로 모여 들었고, 그 세력은 점점 커졌으나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공양왕은 삼척으로 유배온지 한달 뒤인 4월 17일 두 아들과 함께 역모죄로 살해됩니다. 왕명을 받든 사형집행 파견관은 중추원부사 정남진(鄭南晉)과 형조의랑 함부림(咸傅霖)이었으며, 처형방법은 교살(絞殺) 즉 목을 졸라 죽였고, 처형장소는 근덕면 궁촌리 입구의 살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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