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25. 23:51ㆍ그림
Pierre Bonnard ( 1867 ~ 1947 )
프랑스 파리 교외 센현 퐁트네 오 로즈 출생. 처음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공부를 하였으나,
그림에 흥미를 느껴 틈틈이 아카데미 쥘리앙이나 미술학교에 다니면서, P.세뤼지에, M.드니, J.뷔야르 등과 가깝게 지냈다.
1889년 그림에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고갱의 영향을 받은 그들과 반인상파인 나비파를 결성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흑갈색을 기조로 한 차분한 색감으로 파리시민의 일상생활을 상징적으로 그렸으나 40대에 접어들면서는 회색조에서 서서히 밝은 색조로 이행하였다. 독특한 시각에서 잡는 기지적 구도로, 풍경, 멱감는 나부(裸婦), 정물·사람이 모인 부드러운 실내정경 등을, 소박하면서도 감미로운 정감으로 그려, 뷔야르와 함께 대표적인 앵티미스트로 높이 평가되었다.
색채에 대한 관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져 60세를 지나면서는 선명한 명색의 조화를 추구하였으며, 차차 대상의 설명에서 벗어나 현란한 명색이 교향하는 독자적인 색채의 세계를 확립,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남프랑스의 르 카네에 은거하여 제작에 몰두하였으며, 전후에 그곳에서 죽었다. - Daum 지식 -
그때부터 1920년대 후반까지 색채의 중요성을 고려하면서도 구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반영한 누드화를 그렸다.
1920년대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주제의 하나인 목욕하는 여인에 관한 연작을 그렸다.
1920년대말 이후로는 그림의 주제를 거의 바꾸지 않고, 정물과 자화상, 코트다쥐르에 있는
생트로페의 바다, 칸 근처의 르카네(30년 동안 그의 모델 겸 동료였던
마리아 부르쟁과 결혼한 뒤 1925년 이곳으로 옮겼음)에 있는 자신의 정원 풍경 등을 강렬한 색채로 그렸다
보나르는 1893년 16세의 마르트 드 멜리니(본명은 마리아 부르쟁)를 만났다.
마르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경향을 보였는데, 그 증상 중의 하나가 청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여
항상 몸을 씻고 목욕을 했다고 한다.
마르트의 이러한 강박증은 보나르의 강렬한 관음주의에 상응하는 것으로,
욕조 안에 누워있거나 몸단장을 하는 모습을 친밀하게 담아낸 작품만도 100여 점이 넘는다.
마르트는 1942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나르 예술의 중심 주제였고,
그의 아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25년 보나르 나이 58세가 되었을 때 결혼했다.
자화상
색은 언제나 존재하며 색은 빛이 되어야 한다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귀스트 르네 로댕 (0) | 2014.12.15 |
---|---|
Paul Hermann Wagner Wagner (0) | 2014.12.08 |
리꼴레따 토마스 ( Nicoletta Tomas ( 1963~ ) (0) | 2014.07.13 |
흑백의 맛 칼러의 멋 (0) | 2014.02.20 |
뱅크시 / Banksy (0) | 201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