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5. 13:23ㆍ전시회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아버지와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1947년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광풍회전'과 '일전'에 입선하면서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22세였던 48년에는 34회 '광풍회전'에서 최연소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보통 사십대에 광풍회 회원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조선 청년이 최고상을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젊은 작가는 57년 서울대학교의 초청을 계기로 영구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일본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품을 놓고 일본 신문이 '이 작가는 우리와 기질이 다르다'고 썼습니다.
민족이 다르다는 뜻으로 들렸어요. 이왕 그렇다면 고향 풍토 속에서 창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일본화단의 중진작가였던 변시지는 고국에서 펼칠 예술세계에 대한 기대와 열정을 갖고 귀국했다.
하지만 척박한 문화적 환경과 권위적인 한국화단은 그와 맞지 않았다.
"저도 일본 관전에서 컸지만 새로운 것을 하려면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본에서 저는 예술원 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제 주관대로 그렸어요. 한국에 오니까 예술원 회원들이 국전 심사위원을 도맡아 했었어요.
특정 계파에 치우친 심사를 막기 위해 심사위원 제도 개혁을 두 차례에 걸쳐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첫 회만 제대로 적용될 뿐 이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제도도 소용없다고 생각해 국전에 관계하지 않기로 하고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75년에 제주대학의 교수 초청을 수락한 그는 중앙화단을 뒤로 하고 고향 제주로 돌아가 새로운 화풍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잠시 강의하는 일정으로 갔는데 후배 교수와 술 먹고 어울리다보니 고향이라 정이 들었어요.
제주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서울이나 제주도나 같은 한국이니까 비원을 그리던 방식으로 제주도를 그리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겉은 제주도인데 속에서 우러나는 건 제주도가 아닌, 서울 느낌이었죠.
새 기법을 찾아 2년간 헤매다가 77년에 지금의 기법을 찾았어요."
'거친 바다, 젖은 하늘', 캔버스에 유채, 162.2×130.3㎝, 1996
그의 제주도 작품에는 누런 장판지를 연상케 하는 황톳빛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려진 바람, 구부러진 나무, 까마귀 떼, 조랑말, 배, 한 사내가 등장한다. 술에 취한 듯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외로운 사내는 막대에 몸을 의지하기도 하는데, 어린 시절 다리를 다친 후 걷는 것이 불편한 작가를 닮아 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는 금방이라도 이들을 삼킬 것 같지만 이들은 이런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제주도는 외로운 섬이었어요. 못살았고 유배지였죠. 쓸쓸하고 외로운 섬이 그림을 통해서도 표현된 것이에요. 제주 사람들이 우울한 측면도 있지만 절대 어려움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강인하지요."
"그의 작업은 유채라는 안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유화 특유의 광택과 그림 구조를 벗어나 있으며, 마치 장판지에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서양화 재료로 그린 동양화다"라고 말한 미술평론가 오광수의 평처럼 그의 작업은 독특한 한국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초창기엔 주목받지 못했다. 90년대말 인터넷을 통해 작품이 세계로 알려지고 나서야 국내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국에 비해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국내 화랑에 실망, 작가가 화랑과 거래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롯데갤러리 성윤진 큐레이터는 "권력과 명예, 중심으로부터의 단절된 생활은 화가에게 고독과 외로움을 주었지만 그 단절로 인해 제주의 대기와 향토빛을 온전히 담아낸 변시지만의 작풍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일본에서 얻었던 화려한 명성과 천재성에 대한 찬사를 뒤로 하고, 또 한국 중앙화단에 대한 미련도 접고 오로지 예술에만 천착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깔과 독창적인 예술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80년대 시작된 '검은 바다' 시리즈와 '폭풍' 시리즈 중 50·100·500호짜리 대작, 70년대 비원파 시절 작품('가을비원' '자화상') 등 총 35점이 선보인다.
작품 속 사내처럼 그는 제주에 혼자 산다. 부인과 자녀는 서울에 있지만 "사람과 차가 많아 어지러워서 서울에서는 못살겠다"고 한다. 고독과 외로움을 스스로 껴안고 있는 그는 "내가 일본에 남아있었다면 광포회의 이사장이 될 차례지만 난 그런 거에 매력이 없어요. 제주도에서 지금의 그림이 나온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만족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 개화예술공원내 모산`미술관 (0) | 2014.10.18 |
---|---|
충남 보령 개화예술공원 (0) | 2014.10.18 |
박은영 그림전 (0) | 2014.09.22 |
르누아르에서 데미안 허스트까지 (0) | 2014.09.02 |
프라움 악기박물관 140729 (0) | 201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