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 / 박수근미술관

2015. 11. 5. 23:01전시회

 

 

 

 

 

 

 

 

 

 

 박수근  ; 1914. 2. 2  ~  1965. 5. 6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12살에 밀레의 ' 만종 " 을 보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다고 한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화단에 등장하였다.
8·15광복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하고 미협전에서도 입상했다.

 1958년 이후 미국 월드하우스화랑, 조선일보사 초대전,

마닐라 국제전 등 국내외 미술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1959년 제8회 국전에서는 추천작가, 1962년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을 지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 화단에 등장하였다. 

그것을
인정을 받아 교직에 있게 되었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군인들의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 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할아버지와 손자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간암으로 51살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1999년 호암아트홀에서 박수근전을 보았을때 느꼈던 그 독특한 마티에르의 기법의 투박하고 서민적이 애환이 뭍어 있는

그림들을 보았을때의 느낌이 서서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자맥질하고 있었다.   

박수근 그는 우리의 아픈 세대를 표현한 순수한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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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화백의 동상

 

 

 

 

 

 

 

 

일본작가의 작품

 

 

김용철 /   젊어지는 샘물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우리 초등학교때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 난다.

아마 그런 샘물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젊어지려고 아우성일까?

 

 

 

 

 

박수근과 부인과장남

 

 

 

 

 

 

 

 

 

 

 

 

 

 

 

 

                                    전시실에는 큰 그림이  없었다, 어려운 시절 생활을 위해 팔았던 그림들이 지금은 너무 고가여서양구 군청에서

                                        예산문제로  구입할 수가 없단다. 기증한 그림들과 장남이 갖고 있던 드로잉 작품들이 있었다.

 

 

                            

                                     위의 그림은 미술관에는 없는 그림인데   45억 2000에 낙찰된 빨래터의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