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9. 15:50ㆍ우리나라 이곳저곳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과 성주면에 겹쳐 있는 산.
높이 680m. 산림이 울창하여 목재 등 임산물도 많이 생산된다.
또한 단풍 등 경관이 아름다워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예로부터 성인·선인이 살았다 해서 성주산이라 불리었다고 전한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 태종무열왕의 8세손인 무염(無染)이 당나라로 가서 30년 동안 수행한 뒤
귀국하여 이 산에 있는 오합사(烏合寺)에서 입적하였다.
그뒤 사람들이 성승(聖僧)이 살았던 절이라 하여 성주사(聖住寺)라 부르고 성주사가 있는 산을 성주산이 되었다 한다.
또한, 성문(聖門)이 곳곳에 서서 선(禪)과 선(仙)의 규모를 이루며, 기암으로 이루어진 남쪽의 산세에서는
조선 말기 독립투사를 많이 배출하기도 하였다. 성주사지 외에도 산속에는 백운사(白雲寺) 등의 사찰이 있다.
젊은 우리딸은 예쁜 팬션에서 숙박하는걸 좋아하고 우리는 휴양림에서 쉬는걸 좋아한다.
휴일에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지만 평일에는 그래도 쉬운편이다.
휴양림에서의 아침은 나의 오감을 일깨워 활기찬 하루를 맞게 해 준다.
아침일찍 나를 따라 나온 연아가 이 동요를 읽어보더니 할머니 ! " 너무 재미있어"
하며 찍었다.
아침을 간단히 라면으로 해결하고 갈매못성지로 갔다.
가는 도중 오천에서 5일장이 선다고 보자는 할아버지 말을 듣고 내려 장을 알아보니
아침나절 잠깐서 물건을 팔고 들어 갇다고해서 오천항으로 들어가 보았다.
항구는 자그마한데 많은배가 나란히 줄서있다. 고기를 잡으러 가는배가 아니고 낚시꾼들에게 빌려주는 배라고 한다.
평일이고 오전이라 별로 나가지 않았나 보다.
천혜의 입지 조건인 오천항은 삼국시대부터 중국과의 교역항 역할을 맡아왔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다. 조선시대 3대 수영중 하나인 충청수영성이 이곳에 자리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수영 산하에 군선이 142척, 수군이 8,4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천항에 충청수영성이 축성된 건 1509년. 1896년 폐영될 때까지 서해안의 안보를 책임졌다. 당시 충청수영성에는 5개의 성문과 수십 동의 건물이 있었지만 폐영된 이후 많이 무너져내려 서문의 홍예문과 일부 성벽, 진휼청 장교청 등의 건물만 남고 말았다
영보정
1878년(고종15) 화재로 소실된 이후 137년만에 2018년 완전 복원 목표로 발굴과 복원 설계기획이 진행되어온 영보정, 2015년 11월18일 준공을 보인 충남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성내 영보정을 찾았다.
조선시대 서해의 해군사령부 충청수영성의 대표시설이며,서해바다 충청관문을 지키는 수군의 관망대 역활을 해왔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충청수영성'은 이후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될 때까지,
그 규모가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과 그 산하 속진에 배속된 군선은
142척, 수군은 8414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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