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 14:36ㆍ기억하고 싶은 시
6월 / 이외수
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6월엔 내가 / 이해인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유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 업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6월의 나무에게 / 카프카
나무여, 나는 안다
그대가 묵묵히 한곳에 머물러 있어도
쉬지 않고 먼 길을 걸어왔음을
고단한 계절을 건너 와서 산들거리는 바람에
이마의 땀을 씻고 이제 발등 아래서 쉴 수 있는
그대도 어엿한 그늘을 갖게 되었다
산도 제 모습을 갖추고 둥지 틀고
나뭇가지를 나는 새들이며
습윤한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소리는
종일토록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저녁이 와도 별빛 머물다가
이파리마다 이슬을 내려놓으니
한창으로 푸름을 지켜 낸 청명은
아침이 오면 햇살 기다려 깃을 펴고
마중 길에 든다
나무여, 푸른 6월의 나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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