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5. 11:25ㆍ우리나라 이곳저곳
추석 다음날,
가족이 1박2일 가까운 강화도로 떠났다. 가깝다는 이유로 차가 막히지 않을꺼라고.
새로운 길이 생겨서 강화가기는 참으로 편해졌다.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 곳곳이
도로사정은 정말 좋다. 그래도 여전히 공사는 진행중이다.
차가 밀릴까 일찍 떠나 왔으니 2시에 입실인 시간까지 강화를 둘러 보기로 했다.
먼저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전등사. 그저 몇번을 봤어도 처음 보듯 새롭다.
대웅전 앞엔 가을의 상징인 국화가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단청을 하지않은 대웅전은 옛모습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대웅전은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석가·아미타·약사 여래의 삼불과 1916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한 『법화경 法華經』 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 네 귀퉁이 기둥 위에는 여인의 형상이라고 하는 나녀상(裸女像)이 추녀의 하중을 받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
광해군 때 대웅전의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랫마을에 사는 주모에게 돈과 집물을 맡겨 두었는데, 공사가 끝날 무렵 주모는 그 돈과 집물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에 도편수는 울분을 참을 길이 없어 그 여자를 본뜬 형상을 나체로 만들어 추녀를 들고 있게 하였다. 그럼으로써 불경 소리를 듣고 개과천선하도록 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악녀를 경고하는 본보기로 삼게 했다고 전한다.
경내를 찬찬히 돌아보고 죽림다원에서 차를 시켜 한가롭게
묵은 생각들을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겼다.
연아가 찍은 꽃위에 나비사진.
초지진으로 가는 길가에서.
초지진
다음에서 가져온 사진.
강화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
초지진 설치에 대한 기사에 따르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 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 곳은 현재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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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한양에서 가깝고 진입이 수월해서 많은 침략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성벽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초지진대교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