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의 벨베데레궁전

2019. 8. 19. 11:17동유럽



빈 남동쪽에 자리한 벨베데레 궁전은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건축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반갑게 방문객을 맞았다.

고풍스런 건물과 파란 하늘, 공들여 가꾼 정원과 꽃들이 어우러져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이다.

1714~1723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이다.

벨베데레 궁전은 2013년 이전까지는 상궁과 하궁 · 오랑게리(Orangerie)의 두 미술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2013년 현대 조각 전시관인

21 하우스(21er Haus)가 오픈하면서 총 3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상궁은 1955년 5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외무 장관이 모여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부여한 조약을 체결한 장소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잠시 거주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구스타프 클림트 이외에 오스트리아가 낳은

또 다른 대표 화가인 에곤 실레의 작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하궁은 오이겐 왕자의 별궁으로 현재는 바로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상궁의 인기에는 못 미치지만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하궁 옆에 있는 오랑게리는 아열대 식물을 보관하던 식물원인데 오스트리아의 중세 작품 등을 전시 중이다.

21er Haus는 오스트리아 조각가인 프리츠 보트루바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대 조각 미술관이다.







               



               

                    궁의 입구들어서면서 보이는 모든것들은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고흐의 그림 ; 오베르의 평원




구스타프 클림트

  빈 분리파를 창설한 19~20세기 오스트리아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입맞춤>과 <유디트>. 14살 대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장식미술을 공부했고, 초기에는 사실적인 화풍으로 건축물 벽화를 그렸다. 인상파와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접하고, 1897년 이후 빈 분리파를 창설하고 고도의 장식적인 양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후기의 벽화들은 정확한 선묘와 평면적이고 화려한 색채, 금박의 대담한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클림트는 희대의 바람둥이로도 유명하다. 그가 죽자마자 14명의 사생아들이 어머니를 대신해 친자 소송을 벌였다고 하니 여성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



                                                                                 해바라기



화려하고 에로틱한 그림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생전의 삶은 매우 가난했다. 크리스마스 때 집에 빵이 없어

굶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시기도 있었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일화 한토막. 56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극빈한 생활을 했지만 훗날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이 1억3500달러(한화 약 1300억원)에 팔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술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이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평생 가난과 싸워야 했다.

미국의 유명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가에 판매된 이 작품은 벨베데르에선 감상할 수 없다.

 


아델리 불로흐  바우어의 초상


                                                                                    아담과 이브






1890년 오스트리아 동북부 툴른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툴른시 역장으로 일했는데, 실레의 스케치북을 불태워 버릴 정도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학창 시절 실레는 부끄럼 많고 내성적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으로부터 미술 공부를 계속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는 누드화도 있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 이후 삼촌의 도움으로 1906년 비엔나의 예술공예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전통적인 학풍을 띤 비엔나 미술학교로 진학했다.


                                                                 에곤 쉴러  ; 엄마와 두 아이


                                                                        포옹


               

 


해바라기


1907년 그가 평소 존경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유럽 미술계의 변방이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유럽 미술의 흐름을 체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실레는 클림트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실레보다 스물여덟 살이 많았던 클림트는 예술적으로 실레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림 구매, 모델 섭외, 후원자 연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레를 후원해 주었다.

두 사람은 평생 가깝게 지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가족

            

죽음과 소녀.

                         

                                                                          에곤 쉴러의 자화상



자크 루이 다비드  ;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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