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2019. 8. 23. 11:26동유럽

 

 

19세기에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체코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주요공업은 중·정밀기계 제조업과 프라하 맥주를 비롯한 식품류 및 전자·화학제품 제조업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 중앙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강의 서쪽과 동쪽 모두 역사적 기념물들이 많으며 프라하 궁은 강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 전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립박물관까지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하다.

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프라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로는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있다

 

 

 

 

 

 

 

 

 

 

 

 

 

 

 

 

 

 

 

 

 

 

 

 

 

 

 

 

 

                                                                         까를교의 전망대    낮과 밤

 

 

까를교의 전망대 야경.

프라하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려고 세계각국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프라하성

 

                              블타바 강 유역에 있다. 9세기부터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한 도시이다.

                                     작은 정착촌들에서 비롯되었으며, 점차 확장되어 지금은 시가지가

                                                        구릉지대, 블타바 강 지류의 유역들,

                                                강 연안의 계단식 대지까지 펼쳐져 있다.

                                      19세기에 직물과 기계류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한 이래

                                                프라하는 체크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틴성당

 

 

1365년에 건립되기 시작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인 고딕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는 다르게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다.

프라하 성의 성 비트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고 있는 이 성당은

15세기~16세기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높이 80m의 두 개의 첨탑은 아담과 이브의 탑으로 외형상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가 조금 다르다.

두 첨탑 사이엔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과 후스파를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배가 있었으나

30년 전쟁 후 가톨릭이 정권을 잡으면서 왕의 조각상을 녹여 성모 마리아의 초상으로,

성배는 후광으로 제작했다.

성당 내부에는 루돌프 2세 아래서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브라헤(TychoBrahé)가 잠들어 있다.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완전 개방은 하지 않으며, 미사 시간 전후로만 개방하고 있다.

 

 

구시가지 광장

 

 

 

 

                                                       

 

 

 

 

600년이 넘은 낡고 커다란 시계 앞에서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보느라고 인산인해다.

구 시청사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천문 시계 앞에는,

매시 정각(09:00~21:00)에

시계가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인이 모여든다.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 시계를 뒤집는 것과 동시에,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 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나는데,

이 과정을 다 합쳐도 채 1분이 안 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 것을

걱정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시계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고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일행들이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Old Car를 타고 시내를 돌아 구시청사로 가서 이곳 저곳을 돌아 보았다.

 

 

 

 

 

 

 

 

 

                      

 

 

 

 

 

광장에서는 여러가지 포퍼먼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행의 백미가 또 이런것이 아닐까 싶다.

 

 

 

 

                    

 

 

 

 

 

 

체코는 크리스탈이 유명하다. 들어간 가게에 진열된 아름다운  컵들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카를교(Charles Bridge, Karlův most)

까를교      

구시가지와 말라스트라나를 이어주는, 체코에서는 가장 처음 만들어진 돌(석조) 다리다.

블타바 강 위에 세워진 다리 중 유일하게 보행자 전용 다리이면서 프라하 성,

천문 시계와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의 중심이다.

전체 길이는 약 520m, 폭은 약 10m이며 30개의 성상들이 좌우 난간에 각각 마주보며 서 있다.

말라스트라나쪽과 구시가지쪽으로 양끝으로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각각 서 있다.

카를교 위의 성상들은 원본도 있지만 복제품도 마치 원본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복제품의 원본은 국립 박물관과 비셰흐라드 포대에 보관 중이다.

 

 

까를교 위 성상 중의 한 분  / 성 얀 네포무츠키
[sv.Jan Nepomucký(=St.John of Nepomuk)](1683년)

 

 

카를교에서 소원 빌기 -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했던 자리

 

                                   

카를교에서 소원 빌기 -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했던 자리

.

카를교에서 소원 빌기 -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했던 자리

 

 

까를교 양 옆에는 성상들이 세워져 있고 초상화를 그리는사람 , 소품들을 파는 상인들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 버스킹하는 뮤지션들로 붐빈다.

 

 

 

 

 

 

 

 

 

 

 

 

 

 

존 레논의 벽화.

 

 

성 비투스 대성당(체코어

:

Katedrála svatého Víta)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대주교좌로 프라하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뛰어난 전범으로 꼽히는, 체코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성당이다.

 이 대성당에는 여러 명의 체코 왕과 여러 성자들,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기도 하다.

 

 

성 비투스성당

                                       

 

 

1344년 카를 4세의 명령으로 프랑스 출신이었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의 설계로

착공을 시작해서 1352년 그가 죽게 되자 당시 23세였던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뒤를 이어서

책임을 맡고 페터파를러의 뒤를 이어선 그의 아들이 작업을 맡았다.

후스 전쟁 때 잠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성당을 짓는 작업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16세기에 들어서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이 모습을 나타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되었고

19~20세기에 들어와 건축가와 미술가들에 의해서 신고딕 양식으로 프라하의 지표가 될 만큼

규모가 큰 성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습들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듯 황홀하다.

                                               장미창은 색유리 조각이 2만개를 넘는다 하니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를지  짐작이 간다.

                                                                                     

 

 

  

 

  

아르누보 화가의 대표주자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다.

글라스를 하나하나 이어붙여 만든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무하가 유리창에 직접 그려서 가공한 것이라 한다..

보헤미아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했다는 '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 형제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1936년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 했고 가운데 하단 부분에 푸른옷을 입은 사람이 주인공 형제의 모습이다.

 

                      

 

 

얀 네포무츠키 주교의 무덤이다. 불륜한 왕비의 고해성사를 왕이 추궁함에도

불구하고 전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블타바강에 빠져 죽게 된 주교는 어느날 강에 별 5개가 보이며 시체가 떠올랐다고 해서

그의 조각상 어디든 별 5개가 장식되어있다.

 이 은관은 실제로 은을 약 2t 정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카를교에서 블바강 건너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성당의 모습은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중 하나이다.

 

 

'동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 로텐부르크  (0) 2019.08.23
프라하에서 독일 테네스버그로 3시간 이동  (0) 2019.08.23
체코 / 체스키크룸로프  (0) 2019.08.20
빈에 성 슈테판 대성당  (0) 2019.08.19
빈의 벨베데레궁전  (0)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