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룡과강

2023. 3. 30. 01:31영화, 연극

 

 

50년이 된 영화 그 당시에 유명했던 이소룡의 영화로

액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별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남편을 따라 같이 다니다 보니  액션 영화도 재미있어졌는데

TV 체널을 돌리다 눈에 띤 영화다.

제목의 뜻은 사나운 용이 강을 건너다 라는 의미.

단순한 내용인데 이소룡의 발차기와 복싱,펜싱의 발놀림 무예타이, 택권도의 발차기 유도의 던지기 ,관절기 를 접목시켜 만들어진 무술이 상대방 기술을 끊어 바로 공격한다는 의미를 가진 절권도를 보는 것으로 영화는 통쾌하다.

 

오래전에 여행했던 로마를 다시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무법지대인 로마에서까지 이소룡의 필살 액션이 통한다! 아뵤우~!!
                                     진정한 영웅, 그가 돌아왔다!


로마에서 중국 식당을 경영하는 진청화는 폭력 조직에서 가게를 강제로 인수하려고 영업을 방해하자
                     홍콩의 삼촌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홍콩에서 온 당룡(이소룡)이라는
                                        쿵푸 청년이 로마에 도착한다.
                    가라데를 배우는 토니, 지미 등의 종업원들은 그를 과소평가하지만
                              폭력배들을 쿵푸로 혼내주는 그를 보고는 생각을 달리한다.
                    진청화 역시 처음 보았을 때의 의심을 싹 잊어버리고 그를 전적으로 신임한다.
               계속 부하들이 당하자 두목은 진청화를 납치하여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을 시키려하나
                      뒤늦게 달려온 당룡의 일행에 의해 무산되고 만다.
             이들은 당룡에게 맞설 수 있는 무술인들을 미국, 유럽, 일본에서 불러들이고
                        당룡은 유럽, 일본의 고수를 간단히 제압하고 콜로세움에서
                           콜트(척 노리스)와의 최후의 대결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이소룡의 근육은 체육계에서 대단히 유명하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신이 내린 몸'이라고 할 정도.

이소룡은 당시 동양무술가답지않게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역학, 기능 해부학 등의 학문을 파고 들었는데

한때 그는 전통적인 보디빌딩 스타일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벌크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근육의 사이즈 증가에 초점을 둔 운동이 자신이 하는

무술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운동루틴을 대폭 수정했고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몸이 되기에 이른다.

그가 했던 운동들을 아직까지도 격투가들이 한다는 점에서 이소룡을 격투계 최초의

펑셔널 트레이너라고 보기도 한다.

이소룡의 몸은 이제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아져서 기사 등에서도 

이소룡 근육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출생-사망] 1940년 11월 27일, 미국 ~
1973년 7월 20일 (32세)

[신체] 173cm, 62kg
[가족] 배우자 린다 에머리, 아들 브랜든 리, 딸 이향응

[데뷔] 1941년 영화 ''Golden Gate Girl''

[학력사항]
워싱턴대학교 철학 중퇴

 

 

이소룡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홍콩에서 아역 배우로
활동하다가 1970년대에 스크린에 폭발적으로 등장했다.

가장 기억할 만한 초기 출연작은 「인해고홍(1960)」이다.

이소룡의 부모는 말썽 많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그를 다시 미국으로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쿵푸학교를 열고
텔레비전 시리즈 「그린 호네트(1967~1967)」에 출연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계속 텔레비전에서 활동했고 자기만의
격투 스타일인 절권도를 개발했다.



1970년대가 시작될 때 그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배우이자
감독인 나유의 「당산대형(1971)」과 「정무문(1972)」에서
주연을 맡았다. 두 영화는 홍콩에서 대단한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소룡에게 새로운 배우의 경력을 열어주었으나,
그 경력은 영화사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짧게 마감하고 말았다.

그는 1973년에 아주 인기 있는 「용쟁호투」를 만들었고,
그 1년 전에는 「맹룡과강」으로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용쟁호투》 촬영을 마무리하고 몇 개월 후, 7월 26일 개봉을 6일 앞둔 1973년 7월 20일, 그의 애인이라고

소문이 파다했던 여배우 정패(丁珮 Betty Ting Pei) 집의 침대 위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이소룡이 두통을 호소해서 진통제를 주었는데, 이소룡은 그걸 먹은 후 잠든 뒤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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