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7. 01:18ㆍ중국
한양릉은 진시황의 병마용과는 전혀 다른 특색을 지닌 인물 테라코타 5만여 점이 매장되어 있어서, 시안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다. 시안 일대에 산재한 황제들의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발굴되어 ‘중국 최대의 지하 박물관’으로 불린다. 셴양 동쪽 외곽에 시안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도로를 내던 중에, 우연히 한나라 경제(景帝, BC188~141년)와 황후의 무덤인 양릉(阳陵)을 발견했다. 부장갱에서 출토된 도용(陶俑)이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시선을 압도한다. 양릉에는 총 81개의 부장 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10개다. 능원 면적이 20㎢나 되어서 돌아보려면 3~4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시간이 절대로 지루하지 않다.
한나라는 진나라가 멸망한 이유를, 백성들에게 막대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대규모 토목 공사로 징집하여 희생을 강요한데 있다고 보았다. 경제는 한나라가 강대국으로 번성하는데 이바지한 인물로, 중앙 집권제를 공고히 다지고, 세금을 과감히 낮추고, 화폐를 사사롭게 주조하는 일을 전면 금지했다. 외교력을 발휘해 불필요한 군비 지출을 줄이면서 민심이 크게 안정된 시대를 열었다. 그가 재위한 16년을 가리켜 ‘문경지치(文景之治)’라 부르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한나라의 도용들은 소박하다. 키가 60cm로 진시황의 병마용에 비하면 3분의 1 크기. 지하 박물관에서 생생한 발굴 현장과 도용을 볼 수 있다.
- 다음 백과
한나라 역대 황제들의 순서.
한무제의 아버지 한경제.
중국 서안(西安)에 위치한 한(漢)나라 4번째 황제인 경제(景帝)의 릉(한양릉)에서
발굴되여 지하인한양릉박물관에공개된 토용들이 신비스럽다.
토용이라하면 진시황릉의 병마용을 떠올리지만 한나라 경제의 릉에도 수많은
토용들이 있다는 것을 일반인은 잘 모른다. 진시황릉병마용은 일 대 일 비율로 만들어져
토용 하나의 크기가 180Cm가 되지만 한경제의 한양릉토용의 크기는 60Cm정도이며,
재미있는 것은 한양릉의 토용들은 모두가 나체(裸體)토용이면서 팔이 없다는 것이다.
본래는 토용들에 실크로 만든 옷을 입혔으나 그동안 삭아 없어졌고 나무로 만든 팔은
썩어 사라졌으며 토용들의 남,녀 구분이 확실한 것이 특징이다.
양릉의 전시관은 지하에 조성되어 있다. 유물을 보호하면서도 관람객들이 최대한
가까이에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물과 관람객의 공간을 분리해서 온습도 등을
관리하며 유물의 바로 근처까지 유리 바닥이나 유리벽을 통해 접근해서
관람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래서 신발 위에 덧신은 필수로 착용해야 하며 유물 보호를 위해 실내의
조명은 최소로 해놓아서 어둡다.
한양릉은 6번째 황제인 경제와 황후가 같이 묻힌 릉으로 릉 전체의 내부는
웅장하며 지하에서 발견된 유물 역시 대단히 많다. 경제는 문제의 아들 이며 무제의 아버지이다.
진시황의 용마병보다 작아서 귀엽기까지 하다. 그저 놀랍다는 말 외에
무슨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고고 진열관(考古陈列馆)
고고 진열관은 지하 박물관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두 구간을 이어 주는 전동차가 운영 중인데
배차 간격이 20분이나 되어서, 차라리 걷는게 나을 수도 있다. 진열관에는 능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과
도용의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능원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봉분은 황제의 무덤이고,
동북쪽 봉분이 황후의 무덤이다. / 다음 백과
한나라 시절의 의상.
우리 남편이 나를 보고 아직도 서안 포스팅을 하고 있냐며 놀리듯이 말하지만
단체를 따라 다니며 찍은 사진이 엉망인건 짤라서 올리고 해야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웃는다 . 당신이 해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