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6. 23:20ㆍ중국
어도이다.
서악묘(西岳廟)는 옛날 서악화산(西岳華山)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이다.
서악묘의 가장 뒷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만수각은 3층으로 된 누각이다. 계단을 따라 누각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황하(黃河)강이 보여 망하루로도 불리운다.
푸른 소나무와 귀중한 수목들이 무성한 정원에 다양한 건물과 비석들이 산재하고 건물들에는 유명한 그림과 서예작품 등 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불교와 도교, 음양설, 오행설, 민속 등 다양한 내용을 집대성한 제사의식과 등불놀이, 절간장 등 행사들이 상시 거행된다
서악묘는 화음시 동쪽 5리되는 곳에 있으며 역사에서 황제들이 화산신(華山神)을 숭배하던 곳이다. 이 절은 서한 무제 원광초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서악묘의 건축은 동한 시대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당·송 시대에 발전하였고, 명·청 시대에 완벽하게 되었다. 건설초기부터 황제 또는 지식인들이 화산신을 숭배하는 장소였으며, 역대 통치자들은 신을 숭배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였기에 천악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자기의 통치 및 하늘의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표명하였다.
서악묘의 면적은 약 119880 평방미터로, 오악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절이다. 건축형식은 외부는 성이고 내부는 곽이며,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건물이 장엄하고 웅장하여 마치 북경 고궁과 같아 고궁이라고도 한다. 전쟁 및 자연재해를 받았지만 금성문, 영성문, 석패루, 패방, 호영정, 비루, 어서방 등 옛 건축과 높은 문물가치가 있는 비석 50 여개가 현재에도 여전히 보전되어 있다 . 서악묘에서는 서악 화산신인 백제 소호를 모시고 있다.
전체 배치로부터 보면 서악묘의 건축은 남향이며 화산의 주봉을 향하고 있다. 주요건축물은 남북 축선으로 좌우 대칭되며 앞뒤로는 6개 공간이 있으며 서로 어울리게 구성되어 있다. 서악묘에는 “청우수”, “방생지”, “한석인”, “고비루” 및 문물가치가 높은 고목과 비석들이 여러 곳에 있다. 1986 년에 국가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선정되었다.<옮긴 글>
서악묘(西岳廟)
서악묘는 화음시(华阴市)에서 동쪽으로 5km되는 곳에 있으며, 서악황제인 화산신(华山神)을 모시는 사당이다. 서악묘는 한무제 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역대 제왕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서악묘는 남향으로 건축되었으며 대문은 화산을 바라보고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호령문(灏灵门)‧오봉루(五凤楼)‧령성문(棂星门)‧금성문(金城门)‧호령전(灏灵殿)‧침궁(寝宫)‧어서루(御书楼)‧만수각(万寿阁) 등이 건축되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화악묘‧황묘대묘 등으로 불리며, 오악에 있는 사당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며, 북경의 자금성을 모델로 건축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