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3. 23:49ㆍ성지 성당
마재성지는 103위 순교성인이신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정정혜 엘리사벳 남매가 태어난 곳이다.
일반적인 성지는 순교한 곳인데 마재 성지는 한 가정의 신앙 출발지라는 점이 다르다.
신유박해 때 정약종은 참수를 당했고 .정약전은 정약용과 함께 귀향을 떠났다.
정약전은 진주목사 정재원의 둘째아들이다. 정약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형이다.
다산 선생은 4형제는 일찍이 서구에 실용 학문에 심취했다.
실학사상과 함께 천주교리를 접하고 공부해서 신앙촌을 형성했다.
이곳 남양주 마재마을은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가 있는 곳이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세례를 받고 천주교 평신도 단체 ‘명도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최초 한글 교리서 '주교 요지'를 쓴 사람으로 한국 천주교 역사에 큰 업적은 남긴 분이다.
박해 시대에 정약종을 포함 부인과 세 자녀 등 일가족 5명이 순교했다. 정약종 4형제는
유교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를 소개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큰 역할을 했다.
국법으로 천주교를 금지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교로 신앙을 지킨 가족이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나 그 곳에서 1814년에 '자산어보'를 저술,
한국최초의 어류생태서를 완성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실학자로 천주교를 가까이 했다는 이유로 유배당했지만
학문에 더욱 힘써 ' 일표이서'를 비롯한 500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했다.
황사영은 1790년 정조 14년 , 16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합격해서 진사가 되었으나
천주교에 입교한 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정약현의 딸 명련과 혼인하였으며
정약용에게 교리를 배웠고 주문모 신부를 만난 다음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북 제천 배론으로 피신했다. 그곳 토굴에서 박해받는 조선교회의 참상을
알리려고 북경주교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사영백서"이다.
북경 동지사 편에 보내려 했던 이 편지가 도중에 발각되어 9월2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황사영은 능지처참 형을 받았다. 아내인 명련과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십자가의 길 ; 6처.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림.
십자가의 길은
본티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무덤에 묻히기까지 그리스도 수난의 마지막 사건들을
묘사한 14장면의 연속 그림 또는 조각.
1 처.① 예수의 사형 판결, ② 십자가를 짐, ③ 첫번째로 넘어짐, ④ 어머니를 만남, ⑤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함, ⑥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줌, ⑦ 예수가 2번째로 넘어짐, ⑧ 예루살렘 여인들이 예수를 보고 눈물을 흘림, ⑨ 3번째로 넘어짐, ⑩ 겉옷을 벗기움, ⑪ 십자가에 못박힘, ⑫ 십자가에서 죽음, ⑬ 십자가에서 내려짐, ⑭ 무덤에 안장됨이다.
이 연속 장면들은 대체로 성당이나 경당 안벽에 배치해두지만 공동묘지, 병원 복도, 종교단체 건물, 산기슭 같은 곳에 두기도 한다.
이 14개의 십사처들을 방문하여 각 십사처 앞에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명상하는 의식은, 초기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해 빌라도의 관저라고 추측되는 곳으로부터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각 장면의 사건이 일어난 곳들을 방문하며 그 길을 따라 걷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아들한테 마재성지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서 간 성지는 한옥의 조촐한 성당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사람도 없고 지금 마음의 평온함은 순교하신 분들의 신앙이
전해져 오는 듯 머리 속이 맑아진다. 먼저 본당으로 들어가 기도부터 하고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성지 성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동 성당 1898 겔러리 (19) | 2025.03.04 |
---|---|
인천교구 성모당. (47) | 2025.01.22 |
제물진두순교성지 250108 (16) | 2025.01.11 |
성서박물관 (27) | 2024.10.12 |
제주도 용수성지 성당 (27)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