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1. 01:14ㆍ성지 성당
저녁 9시에 평화방송에서 < 평화를위한 고리기도 > 시간에
묵주기도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여러 곳의 성당들이 나온다.
그곳에서 본 인상적이었던 성당이었다. 인천이라 가깝기도 하고 차이나타운을 몇 번을
갔었는데도 참 무심했다.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었다.
그 좋은 날 다 보내고 하필 추운날 발걸음을 하는건 뭐람? 그런데 오늘 가고 싶었다.
인천 지역 최대 순교터 위에 건립된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은 대지면적 109.1㎡(33평),
건축면적 43.3㎡(13평) 규모의 지상 1층 구조로,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문화관
바로 왼편에 15m 높이로 건립되었다 경당 외관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들을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했다
벽면에 적힌 순교자 10위의 명패를 따라 좁고 긴 입구로 들어가면 작지만 아담한
경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 높이 십자가 모양의 유리화 사이로 내려오는 빛은 마치
순교자들을 은총으로 감싸 안는 하느님의 빛처럼 여겨진다
성당 앞에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곳이 있다.
우리 앞에 웬 남자 두 분이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 다음 안으로 들어 갔다.
공연히 내마음도 간절해졌다.
위로와 자비의 주님 !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항상 저와 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나이다.
이곳에서 순교하신 존경하는 분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인천 제물진두(祭物津頭)에서는 우리나라의 첫 번째 영세자인
이승훈 베드로(李承薰, 1756-1801년)의 증손자인 이연구와 이균구 등 열 명이 처형되었다
1868년 4월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에 의해 일어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 무덤 도굴사건과 잇따른 서양세력의 침공과 관련해 조선 정부는
천주교인들에게 책임을 물어 서양 배와 관련된 장소에서 신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진두(津頭), 곧 나루터에서 신자들을 공개 처형함으로써 서양세력의
배척하는 척사(斥邪) 의식을 고조하고 천주교를 금하는 경종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물진두 순교성지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40, 항동1가 1-13)
1800년대 중후반 흥선대원군이 조정을 통치하던 시기,
조선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서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인천 지역은 서양세력이 조선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자,
선교사들에게는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외국과의 통상과 이질적 사상의 침투에 완고했던 조정은 외세와 함께
천주교 신자들을 조선 침략의 공범으로 내세워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촛불을 켜고 경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좁다란 경당 안에는 몇분들이 기도 드리고 있었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과 기도를 드렸다.
한편에 걸린 그림 속에는 1845년 제물포를 통해 중국으로 사제품을 받으러 갔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1888년 이곳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의 모습이 순교자들과 함께 담겨 있다
제물진두 성지를 관리하는 인근의 해안성당과 이곳은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 사제가 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金大建,1821-1846년)가 부제품을 받고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본 후,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인근의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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