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8. 01:13ㆍ전시회

3관 ~ 4관
3부 실향 [失鄕] - 폐허의 땅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발한 6.25전쟁은 한국 사회의 혼란을 더욱 극대화했다. 이 전쟁은 전세의 역전이 극심하여 전 국민 대다수가 황급히 피난을 떠나 가족과 재산을 잃는 민족사의 대비극을 남겼다. 월남 직후에 제주도, 부산, 대구 등지로 피난 온 화가들은 화구재료는 물론, 그간 그려온 그림과 재산, 심지어 가족까지 모두 잃은 채, 그들에게 예술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거나 궁극의 목적이 되었다.
피란지에서도 화가들은 다방이나 회관 등지에서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열어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협회나 단체를 만들며 화단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미술인들은 종군활동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생경하게 기록하거나 폐허의 전경을 예술적 시선으로 그려내었다. 직접 목도한 전쟁의 광경이나 잡지•신문에 실린 보도사진을 참고하여 화폭에 재현한 사실주의 풍경화는 기록의 가치를 넘어 폐허와 재난의 광경에 내재한 숭고한 미학을 경험하게 한다. 어두운 색채와 거친 붓질, 형태의 해체나 분할로 고통의 기억을 화면 안에서 표출한 추상•반추상의 풍경화는 전후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예고하였다. 미술인들은 전쟁의 경험을 돌이켜 그 충격과 공포를 직면하고 창작으로 그것을 상쇄시켜 나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생존과 예술 간의 실존적 갈등이 예술가들의 내면을 지배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표현대로 “신들은 떠나버렸고, 새로운 신들은 도래하지 않은 밤의 심연이 드리워진 시대”에 화가들은 어둠의 풍경을 그리며 이 시기를 버텨나갔다.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었던 6.25전쟁은 휴전협정으로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분단의 벽은 더 견고해졌다. 고향으로 돌아가 봄을 맞이한 이도 있었지만, 휴전선 저 너머 고향을 둔 이들은 하늘의 구름과 강을 바라보며 망향의 한을 달래어갔다. 파괴된 도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분투했고,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 한 채 미래로 나아갔다. 이 시대의 예술 또한 과거의 비극을 품은 채 그리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모색해 나갔다.

오종욱 , < 분신 no 17 > 1973 , 철 포항시립미술관

이응노 < 6.25 전쟁 > 이응노미술관
한국전쟁을 계기로 " 폐허" 는 미술가들에게 적극적인 시각적 재현의
이들은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도하거나 , 보도 사진을 통해 접하며
그 비극적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한강교 폭파로 인해 피란하지 못한
이응노 < 1904~ 1989 >는 서울의 폐허와 폭격장면을 목격했고 , 전쟁의 혼란속에서
아들과 헤어지며 이산가족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경험한 전쟁의 아픔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수묵화는 과감하고 빠르며 거친 필치를 통해 ,
폐허가 된 도시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상봉 < 폐허 > 1953경남도립미술관
전쟁이 휩쓸고 간 서울의 전경을 담은 이종무 < 1916~ 2003 >와 도상봉< 1902~ 1977 >의
작품은 전쟁의 상흔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담담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폐허가 된 전후의 시가지에서 느껴지는 쓸쓸하고 고즈녁한 정서는, 암담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신영헌 < 평양 대동교의비극> 1958 국립현대미술

백락종 , < 무제 . 철조망 > 1964 대구미술관
전쟁은 기존 질서의 붕괴를 가져왔고,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방식과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백락종 < 1920~ 2003 >의
< 무제 ' 철조망 '> 는 분단 상황이 한층 고착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철조망을 붙잡고 있는 인물들의 비장한 표정을 통해 전쟁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실존주의적 감각으로 접근하였다. 남관 < 1911~ 1990 >의
피난민은 어두운 색조와 해체된 인체 형상으로 전쟁의 참화를 상징적으로
시각화하며 내면의 고통을 추상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전쟁기 피난민을
다룬 회화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 시대의 상흔을
미학적으로 성찰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피난민
남관, 195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0.5×130.5cm, 개인 소장
남관(南寬, 1911–1990)은 경상북도 청송 출생으로 한국 전쟁기에 9.28 서울수복 후 부산으로
피란하며 해군 종군화가로 참여했다. 남관은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과 1953년 사이에도
부산에서 김환기와 교류하며 《3.1 기념 해군종군화가단작품전 후기5인전》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피난민〉(1957)은 남관이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제작한 작품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전 작품과는 달리 어두운 색조와 해체된 형상으로
전쟁의 참화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이만익 , < 청계천 > 1964 이만익미술연구소

이달주, < 귀로 > 1959 리움미술관

천병근 ,< 귀향 > 1957 국립현대미술관

이만익 , < 셔울역 > 1962. 이만익미술연구소
이만익 < 1938~ 2012> 의 서울역은 '귀로'의 개념을 도시적 풍경 속으로 끌어온다.
피란과 귀향, 노동과 실업이 뒤섞인 서울역 인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로이자
도시로 흘러드는 생존의 귀로를 동시에 상징한다. 귀로는 단순히 ' 돌아 가는 길'이
아니라 , 상실 이후 존재의 본질로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본능이며 동시에
그리움 , 화해. 성찰, 구원이라는 우리의 정서적 빛과 깊이 맞닿아 있다

남관, < 귀로 > 1951 국립현대미술관
전통 회화에서 < 귀거래도 ; '혹은 귀로'>의 주제는 근대 이후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애호되었다. 이 주제의 기원은 중국 동진의 은일
시인 도연명 < 365~ 427> 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지은 < 귀거래사 >에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귀거래' 는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택 , 즉 ' 귀로'를 상징하며 자연 속에서 자족하며 사는
선비의 은거정신과 조우한다. 이를 근거로 '귀로'의 믜미는 단지 물리적인
귀향이 아니라 , 일상으로의 복귀,존재의 본질로의 회귀, 혹은 이상적 고향에
대한 회상과 같은 상징적 의미로도 확장되어 해석될 수 있다.

무창춘색(武昌春色)
변관식, 1955, 종이에 먹, 색, 181×3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은 1916년부터 외조부 조석진(趙錫晋, 1853-1920)이 강사로 활동하던 서화미술회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1923년에 서화미술회 출신의 이상범, 노수현(盧壽鉉, 1899-1978), 이용우(李用雨, 1902-1952) 등과 함께 1923년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하여 전통 회화의 변화를 모색했다. 1925년부터 1929년까지 일본에서 유학하며 신남화풍을 수용했으며, 귀국 후 1937년부터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금강산을 비롯한 실경(實景) 사생에 몰두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재야 화가의 길을 택해 특유의 ‘소정양식’을 이룩하며 만년까지 화업에 전념했다.
〈무창춘색(武昌春色)〉(1955)은 전라남도 무창의 봄 풍경을 6폭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다. 다만 작품 가장 왼쪽 6번째 폭 상단에 “乙未秋 寫於完山旅次” (1955년 가을완산(전주)을 여행하며 그리다) 라고 적혀 있어, 사생하며 실제의 경치를 옮긴 것은 아닌 듯하다. 화면 가운데 돌로 된 아치형의 다리 너머로 활짝 핀 복사꽃이 이어지는 풍경은 실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변관식은 광주·전주·진주 등 남쪽의 예향(藝鄕)을 유람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전주 지역을 돌면서 떠올린 이상향적 풍경에 전라남도 무창이라는 실제 지명을 붙여 완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유의 적묵법, 파선법을 활용한 묘사는 1950년대 초반 변관식이 완성한 소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응노 , < 당인리발전소 >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

이상범 . < 복구 . 피난에서 돌아와 > 195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국제사회의 개입과 강대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은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되었지만 . 전쟁이 남긴 땅은 폐허의 상처로 가득했다. 파괴된 도시와 농촌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고 , 황량하던 땅에는 다시금 빛과생명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상범 < 1897~ 1972 >의 < 복구 ' 피난에서 돌아 와' > 는 그가 평소 추구하던
이상향과는 달리 , 전쟁으로 초토화된 농촌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김인승 , < 인천앞바다 >1967 서울시립미술관 [유족기증]

임호 제목미상 , 연도 경남도립미술관미상


박수근 , < 농촌 풍경 > 1964 박수근연구소

김원 , < 한강 >1970 대구미술관
서울의 풍경 역시 빠르게 변화했다.
김원 < 1912~ 1990 >과 박상욱 , 박노수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서울의 풍경을
각각 수채화와 수묵채색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담아냈다.
그러나 모든이가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휴전선 너머에 두고 온 그리며 , 흐르는 강물과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망향의
아픔을 달래야 했다. 파괴된 도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분투했고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 한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박상욱, < 서울전경 > 1960 국립현대미술관
박상욱 < 1915~ 1968 >은 서울 출신의 서양화가로, 경기고보 재학시절
김주경에게 그림을 배우며 미술에 입문했다. 해방 이전부터 향토색 짙은
일상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화풍을 유지했으며 , 1958년 목우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작품 활동과 후학양성에 힘썼다. 1960년작 < 서울전경>은 전쟁이후
서울의 도시 풍경을 파노라미처럼 넓은 화면에 수평 구도로 담아내며 ,
밝고 온화한 색조로 일상의 평온함을 포착한다. 박상욱의 작품은 서울의 중심과
그 속의 일상을 따뜻하고 섬세한 터치로 한국전쟁 이후 변화하는 도시와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박노수, < 서울시가도 > 1956 서울시립미술관

이동훈 , < 농촌의 봄 > 1958 국립현대미술관

최영림, < 해변 >1956 리움미술관

전화황 . < 전쟁의 낙오자 > 1964 광주광역시립미술관

이수억, < 6,25동란 >1954가나문화재단

권옥연, ,귀향 > 1999 개인소장
4부 ‘망향(望鄕) - 그리움의 땅’
분단이 고착화되고 이산이 장기화되면서 고향은 희미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대신 그 자리에는 향토의 서정을 환기시키는 모티프들이 다시 등장하면서 고향의 모습은 실재에서 ‘원풍경(原風景)‘으로 회귀한다. 다채로운 색채의 리듬으로 농악, 군무, 항아리를 든 여인을 주제로 목가적인 풍경을 추구한 박성환(朴成煥, 1919-2001),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바다, 물고기, 게, 아이들 등 향토적인 소재를 환상적으로 그린 이중섭(李仲燮, 1916-1956), 고향의 하늘과 강, 들녘을 층층이 쌓은 ‘석양의 화가’ 윤중식(尹仲植, 1913-2012). 이들의 그림에서 고향은 향토색의 전통을 다양한 조형적 시도로 새롭게 구성한 공간이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잊혀 가는 고향은 현실경을 벗어나 원초적 낙원으로 회귀한다. 토속적인 생명체를 몽환적이고 설화적인 공간 속에 부유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홍종명(洪鍾鳴, 1922-2004), 나부(裸婦)의 여성을 지모신(地母神)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최영림(崔榮林, 1916-1985)은 가족을 두고 떠나온 죄의식을 회화라는 원초적 낙원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나갔다. 그리운 북녘땅과 두고 온 가족을 이상향의 공간에서 재탄생시킨 것은 사상과 이념이 대치되고 서로를 금기시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상상할 수 있는 고향 풍경이 아니었을까.
남과 북 그 어느 곳도 선택하지 못한 채 조국의 바깥에서 조국의 현실을 그린 재일교포 화가 전화황(全和凰, 1909-1996),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월남(越南)화가’들은 타의에 의해 원 거주지를 떠나 가족과 고향을 상실하고 고독과 소외, 빈곤과 서러움을 안았던 ‘분단의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들은 실향민이라는 공통된 집단의식으로 더욱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여 1952년 《월남미술인전》, 1957년 ‘창작미술협회’, 1967년 《구상전》의 창립 등을 통해 공통의 예술 방향을 모색했다.
망향의 화가, 그들은 전후 복구와 재건의 시대에 추상으로 기울었던 한국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아닌 주변부에서 묵묵히 화업을 이어갔다.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국적 서정의 자연주의, 혹은 목가주의 경향은 전형적인 향토색 회화의 토대 위에서 민족성의 추구와 망향의 정서가 만나 이루어진 세계이다. 그들의 풍경 속에서 목동의 피리 소리 고적하게 들리는 가운데, 저 멀리 대기 속으로 사라져가는 거대한 산의 형상은 잊혀진 고향의 모습처럼 아련하다.


박철준 , < 망향 > 197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최종태 , < 회향 > 국립현대미술관

윤충식 , < 봄 > 1975 국립현대미술관
윤충식은 < 1913~2012 > 은 평안남도 평양출신으로 , 그에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소재로 석양, 섬, 강,돛단배 ,비들기, 들판 등이 반복적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 봄 >은 달빛 비치는 밤 , 커다란 나뭇가지에 앉은 두 마리 비둘기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윤충식 , < 섬 > 1953 국립현대미술관

윤충식 , < 환희 > 1970 국립현대미술관
< 환희 > 는 윤충식의 계단식 구도를 따르며 , 수평인 하늘 . 산 .마을을 가로질러
높이 날아오른 비둘기 한 마리가 화면의 생동감을 더한다. < 평화 >는 해 질 무렵의 하늘과
마을., 옥수수 밭이 층을 이루며 펼쳐진다.주홍빛으로 물든 밭 위에 포착된 두 마리 비둘기는
부부의 사랑과 따뜻함을 상징한다.

윤충식, < 평화 > 1980, 국립현대미술관

윤충식, < 전쟁드로잉 > 1951 성북구립미술관
윤충식은 6.25전쟁 당시 피란 도중 아내와 큰딸을 잃고 ,
젖먹이 막내딸마저 영양실조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부산에 도착한 후
종이와 물감을 구해 고통과 참상을 화폭에 담았고 , < 전쟁드로잉 >은 그가
아들과 함께 공습을 피해 도망치던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윤충식, < 전쟁드로잉> 1951 성북구립미술관

윤충식 , < 전쟁드로잉 >

최영림, < 옛터 > 1962 국립현대미술관
최영림 < 1916~ 1985 >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 6.25 전쟁 발발 후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 채 홀로 월남했다. 실향과 이산의 아픔, 가난에서 비롯된 고통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흙과 모래를 캔버스에 바르고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황토색이 주조인 화면을 만들었다.


최영림 , < 1950 . 6,25 > 1974 국립현대미술관

봄동산
최영림, 1982, 캔버스에 유화 물감, 흙, 127×191cm, 서울미술관
최영림(崔榮林, 1916–1985)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6.25전쟁이 발발한 후,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 채 홀로 월남했다. 실향과 이산의 아픔, 가난 속에서 파생된 처절함과 고통은 1950년대에 제작된 작품에 절절히 투영되었다. 그는 1959년에 재혼을 하면서 안정감을 되찾았고, 이후 그림의 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긴다. 1960년대부터 흙과 모래를 캔버스에 바른 다음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황토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을 만들었다.
〈봄동산〉(1982)은 그의 말년작으로 화풍의 완숙미가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다.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동산에서 아이를 업은 여인과 천진난만하게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을 구현하였다.

최영림 < 낙원 > 1970 국립현대미술관
< 낙원> 은 황토색 톤으로 흙과 땅을 연상시키며 , 벌거벗은 인물들의 피부도
흙 질감처럼 표현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화면 곳곳에 파랑, 초록, 노랑, 주황 색채가 생명력과 생동감을 더한다.
< 소와 아이들 > 은 긴 화면에 누런 소와 아이들,닭, 나비가 어우러져
노는 모습을 그렸다. 소는 농경 사회의 동반자이자 가족 같은 존재로 ,
순수한 아이들과 자연의 교감이 고향에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자아낸다.

최영림 , < 소와 아이들 > 1981 국립현대미술관

홍종명 . < 낙랑으로 가는 길 > 1957 국립현대미술관
홍종명 < 1922~ 2004 >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6.25전쟁 이후 남쪽으로 피란하여
제주에서 후진 양성과 작품 활동을 했으며 ,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운을 주로 표현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앙을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도 남겼다.

홍종명 < 과수원집 딸 >

홍종명 , < 옛동산에 오르면 > 1963 최태호 소장

신석필 < 강변의 가족들 >1959 대구미술관
신석필 < 1920~ 2017 > 황해도 출신의 월남 미술가로 ,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실향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냈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남하한 그의 삶은 작품 전반에 실향민의 정서를 깊이 투영하고 있으며,
특히 헤어진 가족과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주목된다.
1959년 작 < 강변의 가족들 > 은 헤어진 가족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통해
북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박성환 < 무제 > 연도 미상 대구미술관

박성환 < 고향가는 길 > 1978 대구미술관

이중섭 < 통영풍경 > 1950년대 리움미술관
< 선착장을 내려다 본 풍경 >, < 통영풍경> <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은
이중섭이 1953년 통영 체류 시기 작품들로서 , 모두 근경의 나목과 먼 산을 배치하고
이중섭 특유의 힘찬 선묘로 표현되었다.< 선착장을 내려다 본 풍경 >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그리움괴 셀렘을 담았다면 <나무와 까치가 있는 풍경 >은
까치가 새끼를 돌보는 모습을 통해 무능한 가장의 애절한 심정을 요약된 형상과
속필 선묘로 나타냈다.


이중섭 , < 가족 > 195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1950년대 전반의 < 가족 >,< 길 떠나는 가족>, < 현해탄>은 이중섭의 이별한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들이다. 가족은 부부와 두 아이가 서로 끌어 안은 환상적 구도와
격정적 붓질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1954년 편지화< 길 떠나는 가족 >은 서로 떨어져 있으나
가장이 소를 끌고 ,아이들이 서로 연결된 구도가 인상적이다. < 현해탄>은 한-일 국경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재회의 그리움을 삽화처럼 표현했다.

이중섭 < 현해탄 > 1954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 < 길 떠나는 가족 >1954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 섶섬이 보이는 풍경 > 1951 이중섭미술관
이중섭은 < 1916~1956 > 은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으로 , 향토적 제재와
범자연적 모티프로소, 닭, 게 , 물고기, 아동, 가족 , 풍경 등을 유화,은지화 ,
엽서화 등으로 표현했다. <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 서귀포 피란 시절 그린
작품으로 , 반부감 시점에서 서귀포 마을 앞바다와 섶섬 전경을 황토색과
청색대비를 활용해 인상주의 화풍으로 차분하게 묘사했다.

신석필 < 만추 >1975 대구미술관

김종휘 <오한 2 >1973. 유족소장


향리(鄕里)
김종휘,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97×194.5cm, 국립현대미술관
김종휘(金鍾輝, 1928–2001)는 경상북도 경주 출생으로 줄곧 자연과 고향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탐구해 나갔다. 그는 서양화와 동양화의 표현 방식을 넘나들며, 자연을 통해 삶의 기억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유년 시절 부친의 사업으로 잠시 머물렀던 함경남도 신흥군 원평면 풍서리는 단순한 체류지가 아니라, 작가의 기억 속에서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산을 오르며 자연과 가까이 지냈던 그 시절을 자주 떠올렸고, 이후 그 기억은 경주의 풍경과 겹치며 그의 작업 속 자연 이미지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그는 〈향리〉 연작을 통해 같은 주제를 반복해 그렸다. 〈 향리〉(1987)는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담백한 터치, 맑은 마티에르가 특징적이다. 화면은 메마른 갈필로 처리된 황갈색 계열의 색감으로 채워져 있으며, 향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1987년 〈향리〉는 선적인 표현과 빠른 필치가 더욱 두드러지며, 전체를 조망하는 듯한 시점 속에 광활한 자연이 힘 있게 펼쳐진다. 두 작품 모두 특정한 장소의 재현이라기보다, 작가의 기억과 정서가 응축된 내면의 풍경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향리’는 실제의 고향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은 고향의 감각이자 오래도록 지속된 회화적 주제였다.

김종휘 <향리 > 1983 국립현대미술관


성지
박돈, 195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1.9×130.3cm, 리움미술관
박돈(朴敦, 1928–2022)은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해주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남하했다. 그의 회화는 한국적 정서와 조형 의지를 담은 서정적 구상으로, 설화적 모티프와 상징을 통해 기억과 그리움을 형상화했다. 토기와 백자, 피리를 부는 소년·소녀와 동물 등 향토적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담백하고 건조한 마티에르는 수묵화의 깊이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그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북에서 보낸 유년기의 체험은 향토적 소재로 변주되어 나타나며, 이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상실된 고향에 대한 정서를 상징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품에서 반복되는 향토적 소재와 망향적 분위기는 그의 작품세계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다. 〈성지〉(1957)는 박돈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둥근달이 떠 있는 밤하늘 아래 나무에 기대어 피리를 부는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이 화면에서 소년의 형상은 자전적 정서의 투영으로 읽히며, 화면의 분할은 입체주의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이석우 < 피난길> 1960 부산시립미술관

박노수 < 서울시가도>1956 서울시립미술관

이만익 < 종점 > 1965~1966 이만익미술연구소


참여작가
- 강운섭, 권송대, 권옥연, 권진호, 금경연, 김기림, 김남배, 김세용, 김수명, 김용조, 김우락, 김우모, 김원, 김인승, 김인지, 김정현, 김종태, 김종휘, 김주경, 김환기, 남관, 도상봉, 문신, 박노수, 박돈, 박득순, 박명조, 박상옥, 박성환, 박수근, 박철준, 백락종, 백석, 변관식, 변시지, 서동진, 서석규, 손일봉, 송혜수, 신석필, 신영헌, 안기풍, 안승각, 양달석, 오장환, 오종욱, 오지호, 우신출, 유영국, 윤동주, 윤중식, 이달주, 이동훈, 이만익, 이상범, 이상정, 이상화, 이석우, 이수억, 이용악, 이응노, 이인성, 이종무, 이중섭, 임응식, 임호, 장리석, 전선택, 전혁림, 전화황, 정운면, 정종여, 정지용, 정현웅, 진환, 천병근, 최계복, 최덕휴, 최영림, 최종태, 한묵, 허건, 허백련, 홍종명, 황유엽 등 미술인 및 문학작가 총 85명작품수회화, 사진, 조각, 드로잉 등 210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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