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타워 / 루쉰공원< 구 홍커우공원 >

2025. 12. 27. 20:24역사 탐방

 

 

상하이 타워는 건축 설계 기업인 겐슬러에 의해 설계된 건물이다.

높이는 632m로, 완공과 동시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로 등극했다.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약 360도를 비틀어 올라가도록 하여 용을

표현한 건설 공법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상하이 타워는 3개의 구조물을 결합하였는데, 이는 외부 압력으로부터

고도의 내구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유리 외벽 속에 또 다른 외벽을 집어 넣은 이중 유리 외벽은 단열 효과가 있어

냉난방비 절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위층이 아래층보다 1도 정도

비틀리도록 설계하고  980개의 말뚝 기초를 86m의 깊이로 박아,

바람이 강하게 불고 지진대에 위치한

상하이 타워의 지형적인 요소까지 고려한 스마트 설계를 펼쳤다.

엘리베이터 역시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를 자랑하면서 회생

전기 시스템을  채택해 에너지 소비량을 30%나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상하이 타워의 최고층 125~126층에는 바람을 막는 완충기를 설치해

가장 아찔한 높이에서  소규모 음악회나 예술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올라 가려면 전망대 118층에서 내려  상해 야경을 보고 한 층 올라가

119층에서 엘베타고 126층으로 올라 간다.

 

 

바람에 의한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축가들의 고민 끝에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비튼 것이다.

풍(風) 공학 전문팀의 실험 끝에 상하이 타워를 180도 비트는 것이 바람의 영향이

제일 적고 안정감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비용의 문제 때문에

120도 튼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비상하는 (龍)을 형상화 했다고도 한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125층에 진동 감소 댐퍼를 설치했다.

이 댐퍼는 작은 박물관 형태로 일반인에 공개되어 있다.

이외에도 다른 마천루들과 달리 건물 내부를 9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그 공간 안에 오피스를 채우는  방식으로 건설되어 있다.

보통 일반 마천루들이 오피스와 창문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는 걸

생각해 볼때  의외로 볼 수 있는 부분. 대신에 이런 구조는 건축 면적 대비 실평수가

작아지는 단점이 존재한다. / 다음백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상해타워 118층으로 올라 갔다.

우리나라 롯데월드타워를 떠올리며 은근히 비교의 눈길을 보이지만

일단은 상해타워가 더 높다.

 

 

 

                            초고속 엘베를 타고 118층에서 내렸다.

 

118, 119, 121층에 전망대가 설치되었으며, 121층은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562.1m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지만  핑안 파이낸스 센터(599.1m, 전망대 562.2m)가

완공되면서 밀려났다. 전망대까지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분당 1,230m로  세계에서 2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다.

 

 

상해에는 높은 빌딩 외벽에 전선을 설치해 조명을 의무화 해서 전기

요금은  국가에서  내 주는데 만약 고장나서 고치지 않아 빌딩에

빛이 앖으면  다음날로 영업정지 시킨다고 한다.   가이드 말이.

그래서 그런지 야경이 아름답다.

                           118층에서 내려 전망대에서 상해 야경을 내려다 본다.

 

 

 

 

                                   왼쪽에 동방명주 빌딩이 눈 앞에 보인다.

 

                           

                            일명 병따개 타워. 윗부분이 구멍이 뜷렸다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한강 다리는 33개라고 하는데

상해를 흐르는 황포강의 다리는 8개라고 한다.

 

 

 

 

지진의 흔들림을 보조해서 조절해 주는 댐퍼라고 하는데

이 곳에서 레이저로 댐퍼 라이트 쑈를 볼 수 있었다.

 

 

 

 

                               댐버 라이트 쑈는 화려하고 현란했다.

                               누가 이 꼭대기 층에 이런 화려한 쑈를 하리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왜 그런지 사람들은 벌로 없었다.

 

 

 

댐퍼 라이트 쑈 공연을 보고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사령관에게 폭탄을 던진 루쉰공원으로 갔다.

이 야밤에 공원을 ?   일정에는 내일이었는데 상해에서 내일 일찍 무석으로 떠나려고 한단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신공원)에서

일본 황제 히로히토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일본군과 식민지 관리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윤봉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통에 숨겨진 폭탄을 단상에 던져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거류민 단장

가와바타 사다지를 처단하고, 여러 고위 관리들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이 폭발은 일본 당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한국인의 저항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봉길은 폭탄 두 개를 준비했으며, 하나는 공격용, 다른 하나는 자결용이었으나

자결용 폭탄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고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평가되며,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는 그의 행동을 “수만 명의 중국 병사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젊은 한국 애국자”라고 극찬했습니다.  

 

 

19세기 말에 조성된 이 공원은  소설가 근대 문학의 거장 루쉰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 공원 근처라고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서양식 정원 양식을 기반으로  공원 내에는 청왕조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는 과도기에

중국 근대 문학의 소설가 루쉰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그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루쉰 기념관이 있으며 그의 묘도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고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동상이 있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지만 우리는 밤에 갔으므로 

기념관은 들어가지 못했다. 아쉽게도..

 

 

 

 

공원에서 본 홍커우 축구장.

 

훙커우 공원 의거 직후, 윤봉길은 일본 당국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1932년 5월 25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12월 19일 오전 7시 27분 일본 가나자와 육군 감옥에서 총살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고작 24세였습니다. 처형 직전까지 그는 조국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유지했으며,

그의 마지막 순간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윤봉길은 한국과 중국에서 영웅으로 기려집니다. 1946년, 그의 유해는 일본 노다야마 묘지에서

발굴되어 서울 효창공원으로 이장되었으며, 한국식 장례 의식이 치러졌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서울 양재 시민의 숲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상하이 루신공원에는 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또한, 충청남도 예산군에는 충의사와 기념관이 있으며, 그의 고향은 1972년 사적 제2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윤봉길은 한국과 중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일본과 일부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인물로 여겨집니다.

일부는 그의 행동을 테러 행위로 간주하며, 이는 그의 유산에 대한 국제적 시각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그의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2019년 한국과 중국은 그의 의거 87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행사를 상하이에서 개최했습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당시의 모습이었다.

 

 

                                고양이는 피하지도 않고 우리 일행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용기와 헌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애국자였으며,

그의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일환으로 평가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되새기고,

그의 정신을 계승해야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불꽃 같은 삶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며,  그의 유산은 세대를 이어 계속해서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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