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씨행단 / 고불맹사성기념관

2026. 4. 29. 10:10역사 탐방

 

 

맹사성(孟思誠)은 1360년(공민왕 9년) 7월 17일 수문전제학 맹희도의 맏아들로

온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 혹은 동포(東浦)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 동국신속삼강행실도 > 에 실렸다.

 

 

 

 맹사성은 <1360~ 1438>은 세종대왕을 보필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청백리이자 명재상이다.

황희 정승과 함께 조선 건국 초기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 강호사시가' 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검소한 생활과 청렴한 정치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있으며

우의정, 좌의정까지 올랐다. 

실록에서는 그를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부드러워서 조정의 큰일이나 관직에서 일을 처리할 때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황희는 세종 시대의 수많은 업적이 전해지지만 맹사성은 상대적으로 그 업적이 확실하게

기록되지 않았고, 야사를 통해 청백리로서의 소박한 삶과 진솔한 인품만이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음률에 대한 지식과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 < 강호사시가> 통한 문학적 재능은

성군 세종이 그를 왜 중용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행단이라 불리게 된이름의 유래는 고택 앞마당에 심어진

                수령 600여 년의 거대한 은행나무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맹사성이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강학을 했다고 하여  ' 행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세덕사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맹씨행단의 별묘로 건립된

세덕사(世德祠)본체 우측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흙으로 단을 쌓아 높게 한 후

담장을 둘러 독립적인 공간을  구성해두었다. 

세덕사(世德祠)는 세상에 덕을 미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당 건물은 정면 세칸, 측면

두 칸으로, 정면에는 반 칸 규모로 퇴를 달아두었으며, 내부는 통칸이다. 

반듯하고 네모난 돌을 가지런히 쌓아 한 단 높이 기단을 만든 후 그 위에 네모나게

다듬은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을 얹어 화려하지만 근래에 새로 만든 것으로 건물을 구성하는

옛 부재들과 다소 다르다. 맹사성과 더불어 그의 부친과 그의 조부의 위패를 모셔두었다. 

매년 10 10일에 숭모제가 거행되고 있다.

 

맹유는 맹사성의 조부로 고려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다 순절하였고,

부친인 맹희도는 벼슬을 버리고 한민(閒民)으로서 충절을 지켰으며, 맹사성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나눈 서민의 정승으로 유명하다.

 

 

 

 

국가민속문화재 22호로 지정된 맹사성 고택은 설화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배방산을

동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수백 년간 무사히 보존되어 온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다.  고려 말 충신이던 최영 장군이 살던 집으로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가 된 맹사성에게  그 집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가옥의 형태는 ‘ㄷ’자형의 맛배집으로 목재는 광솔이 되다시피 그을렸으며,

기둥과 도리 사이에는 단구로 봉설(봉황의 혀)이 장식되었고, 내실 천정은 ‘소라 반자’로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반자다. 사적으로 지정된 맹씨행단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으로 맹고불의 고택, 구괴정, 쌍행수 등을 망라하여 ‘맹씨행단’ 이라 한다.

맹사성은 이 은행나무 두 그루를 손수 심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대청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앞마당의 풍경은 사철 내내 한 폭의 그림과 같고

경내에는 고택외에도 맹씨 집안의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인 세덕사와 맹사성이

노년에 여유를 즐기며 시를 읊었던 정자 귀괴정이 있다.

 

 

고택은 맹사성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박하고  단정하다.

대청마루

 

맹씨고택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 2월 무민공(武愍公) 최영의

부친인 최원직(崔元直)이 건축하였으며, 실제로 최영이 살았던 집이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최영이 죽은 뒤,

비어 있던 집에 맹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이곳에 거처를 옮겨 은거하였다.

김세환의  '목장길 따라' 가 입안에서 맴돈다.

            

 

 

고택에서 뒷쪽으로 나가는 조그만 문이 있어 그 곳으로 나가면 조용하고 한적한

들길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구괴정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아산맹씨행단근처에 있는

구괴정(九槐亭)은 맹사성, 황희, 권진 등 세분의 정승이 느티나무 아홉 그루를 심고

시문을 짓고 국정을 논의하던 정자로, ‘삼상당이라고도 불린다. 

구괴정은 정면 3, 측면 2칸의 6칸 규모로, 개방된 마루 구조와 팔작지붕이 특징이다. 

아홉그루의 느티나무 중 두그루만 남아있다

 

 

 

 

 

바로 맞은편에는 고불 맹사성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념관에서는 맹사성의

생애와 청렴한 삶,  그리고 맹씨행단의 건축적 특징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어,

방문객들이 깊이 있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고불맹사성기념관은 총사업비 23억을 들여 대지면적 4,979㎡(1,508평)에,

건축연면적 384.12㎡(116.2평)의 2개동 지상1층 규모의 시설로 지난 2016년 4월 착공,

1년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개관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09호 맹씨행단 맞은편, 아산시 배방읍 중리 275번지에 위치한

본 기념관은 전시관 99㎡(29.95평), 영상관 59.4㎡(17.97평), 방문자센터 및 사무실 54㎡(16.33평),

수장고 18㎡(5.44평), 체험관 74.52㎡(22.54평)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무원, 공공기관, 교육청 및 관내 초·중·고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고불맹사성기념관과 맹씨행단 관람을 통해 조선 초기 건축물의 특징과 맹사성의 일생을

통한 청렴정신 및 청렴ㆍ부패, 윤리경영의 올바른 이해를 유도하는 프로그램과 다양한

체험활동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청렴교육의 메카로서 청념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맹사성고택

 

 

 

 

 

 

 

 

 

 

 

 

 

 

 

 

 

 

 

 

 

 

전시관 앞마당의 검은 소

 

후세인들은 맹고불이라 하면 검은 소 등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노인을 연상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다.

성격이 소탈했던 그는 외출할 때면 소 타기를 즐겼고 손수 악기를 만들어 연주했다.

집에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복장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 맞이했으며,

손님에게는 반드시 상석을 내줄 정도로 겸손했다.

 

소를 타고 피리 부는 맹사성   /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말년에는 고향인 온양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당시로서는 비교적 장수한 79세를 일기로 1438년 사망하였다.
맹사성이 세상을 떠나던 날 세종이 모든 국정을 중단한 채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문상했다고 하며, 사후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4월 답사는 이것으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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