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 20:30ㆍ역사 탐방
역사탑방 선생님이 작성해서 나누어 준 일정표이다.
이순신장군의 해전 발자취를 따라 나선 답사여행이었다.
새벽 5시30분 신도림에서 집결 50분에 통영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 한대 ; 정원 40명
2박3일

오늘은 첫날.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경내에는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7년(1681)에 60대 민섬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1985년 1월 14일에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충렬사(忠烈祠) 입구 길 양쪽에
줄나무로 심어져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된 4그루를 보호할 목적으로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나무의 높이는 6.3m이고, 수관폭(樹冠幅)은 동서로 6.6m, 남북으로 7.0m이며,
뿌리목 줄기둘레는 1.75m나 되는 거목으로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백나무는 늘푸른 큰키나무로 오래 사는 나무이며 잎과 꽃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동백꽃이 필 무렵 이곳 바닷가 어민들이 한 해 동안의 비바람이 순조로울 것을 기원하는
풍신제(風神祭)를 지낼 때면 언제나 명정동 처녀들이 물동이에 이 나무의
꽃잎을 띄워 바쳤다고 한다. 우리나라 난대의 상록활엽수림을 대표하고 동백나무는
우리 민족의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1866년부터 1871년까지 단행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패령 당시 아산의 현충사가
유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철폐되었던 것과는 달리 충렬사는 철폐를 면했다.
고종31년(1894년)에 206대 통제사 민형식(閔炯植)이 이순신의 생신을 기리는
'이순신대감생신계'를 만들었는데, 그 이듬해에 삼도 수군 통제영이 폐지되고
대한제국 선포 뒤에는 통영 지역 진남 진위대로 제향 임무가 넘어갔다.
경술국치(1910년)으로 대한제국이 망한 뒤에는 기존에 충렬사에서 행해오던
이순신에 대한 제사는 지방의 유림들이 이 이순신대감생신계와 협동하여 관리하였으며,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생신계 · 기신계 · 착량묘관리회(鑿梁廟管理會)를 통합하고
충렬사영구보존회(忠烈祠永久保存會)를 설립해 제향을 맡았다.



강한루는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 - 이충무공의 8세손)이
1840년에 지은 누각이었으나 훼손되어 1988년 복원되었다.
전형적 조선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정면 세칸, 측면 두 칸의 익공식 이층 구조에
아래층 뒤편에는 통용문인 <영모문(永慕門)> 현판이 걸려 있다.
충렬사의 대문 역할을 했던 강한루. 강한은 중국 양자강과 그 지류인
한수가 만나는 지역으로 삼국지의 시대 배경인 춘추전국시대, 군사요충지였다.


경충재(景忠齋)
제70대 통제사 최숙이 건립(1695). 지방이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충의를
가르치던 강당으로 충렬서원이라 불렀다.


숭무당(崇武堂)
제70대 통제사 최숙(崔橚)이 전면에 있는 경충재와 동시에 건립,
조선수군장교료 3명이 상주(常駐)하여 제위(祭位)전답과 사무(祠務)를 관리하던 곳이다.
현재는 본 재단의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현종 11년(1670년) 51대 통제사 김경(金鏡)이 동재,서재 두 개의 재를 지었다.
1695년에 통제사 최숙이 부속 건물인 경충재를 증축해서 서원으로 꾸미고 지방민들을
교육하면서 사당이자 교육 기관으로써의 기능도 겸하는 '충렬서원'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된다.




충렬사 중문

정당
성웅이순신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지난 300년간 제향을 받들어온 곳으로
좌,우로 팔사품도 병풍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日章旗)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새긴 주역(周易) 팔괘(八卦)는 음양의 조화(造化)와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역(易)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제의(祭儀)는 정통 유교의 법식을 고수한다.






충렬묘비

유물전시관
팔사품은 명나라 황제가 구국의 영웅인 성웅이순신께 하사한 8종류15개의 유물이다.
임진왜란이 명나라로 번지는걸 막아 준 감사의 표시이다.





곡나팔(曲喇叭)
출동시 접전시(接戰時)에 하늘을 찢을 듯한 큰소리를 내어
사기를고무시키거나 군령신호 때 사용하였다.

도독인(都督印)
선조 31년(1598) 명나라 신종(神宗)이 충무공(忠武公)에게 수군도독을
제수하면서 이 도독의 직인(職印)과 모든 의장물을 보내온 것인데,
인문은 아홉 번 꺾어 쓴 전자로 도독이라고 쓰여 있다.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8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보물440호)과 명조팔사품은
명나라 조정의 8가지 하사품 <보물 440호 >이란 뜻인데 명나라의 수군장수 진린이
이순신장군의 인품과 위업을 보고하자 명의 신종은 이순신을 조선의 수군도독으로
임명한다는 증표인 도독인과 함께 7가지 전리품을 한 쌍씩 내린 것이다.
이 후 명조팔사품은 도독인1점 및 호두령패, 귀도, 참도, 곡나팔, 홍소령기, 남소롱기
독전기가 한 쌍씩 총1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가 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1질을 통영충렬사에 내리면서 직접 지어
내린 제문 등이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영패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해 주시고 있다.


참도

귀도
독전기(督戰旗)
적(敵)과 접전시에 연합군(聯合軍)을 독전(督戰)하던 기(旗)로서,
중앙에 비단을 오려 붙인 글자는 범군임적부룡명자처참
(凡軍臨敵不用命者處斬 - 적과 싸울 때에 명령을 어긴 자는 처참)이라 쓰여 있다.



골담초
'역사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충무 / 삼도수군통제영역사관 (15) | 2026.05.11 |
|---|---|
| 착량묘 (26) | 2026.05.06 |
| 맹씨행단 / 고불맹사성기념관 (20) | 2026.04.29 |
| 온양 어의정 (23) | 2026.04.27 |
| 충무공이순신기념관 (11) | 202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