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능 130503

2013. 5. 13. 15:45서울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벼르기만 하던 선능을 들어 갔다.

도심 한복판에 능이 있어도 한번을 들어가게 안됬다.

옛날에는 사대문 밖이었으니 외진 산골이었으리라.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생전에 누렸던 부귀 영화도 죽으면 그저 한 줌의 흙인것을...

 

 

세조의 큰아들인 덕종(德宗)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이다.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공혜왕후(恭惠王后)이며, 계비(繼妃)는 우의정 윤호(尹壕)의 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1461년(세조 7) 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가 1468년 잘산군(乽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이해 세조가 죽고 예종이 19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자 세조의 즉위 때 공을 세운 신숙주·정인지·한명회 등의 훈신(勳臣)들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정치적 지위가 급상승한 남이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왕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가운데, 1469년 예종이 죽자 병약한 형 월산군(月山君)을 대신하여 1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7년간 정희대비(貞熹大妃:세조의 妃)의 수렴청정을 받아 독자적으로 정국을 운영하지 못했으며, 훈신세력이 모든 군국사무를 주도했다. 훈신세력은 성종이 즉위하던 해 가장 위협적인 정적이던 구성군(龜城君) 준(浚)을 유배시킴으로써 권력을 더욱 안정시킬 수 있었다. 1476년(성종 7) 친정(親政)을 시작했으나 세조와 같은 전제권을 확립하지는 못했다. 이해 공혜왕후가 아들이 없이 죽자 윤기견(尹起畎)의 딸 숙의윤씨(淑儀尹氏)를 왕비로 삼아 연산군을 얻었다. 그러나 윤씨의 투기가 매우 심해 왕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1479년 윤씨를 폐위하고 1482년 사사(賜死)했다.(  다움 백과 사전에서 )

 

한낮의 능은 무심하다.   푸르름은 오후의 나른함을 말끔히 씻어내고 잡다한 생각들을 밀어내어 준다.

 

 

 

 

 

 

 

 

 

 

 

 

 

 

                50년을 같이 해 온 친구이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만 그래도 주고 받는 말은 멀리서 보아도 정겹기만 하다.


                                무슨 꽃일까?  이름은 모르겠지만 빨간 꽃이 예쁘게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능을 천천히 산책하며 돌아 나와 바로 앞에 전통 찻집에서 차 한 잔을 하기로 했다.

대추차와 쌍화차의 맛이 깊은 맛이 있고 같이 나온 한과도 맛이있었다.

주인이 직접 차의 원액을 발효시켜 만들고 있었다.  따듯한 차로 피로했던  발도 쉬고 마음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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