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 전주경기전 , 어진 박물관, 풍남문

2014. 6. 26. 16:17우리나라 이곳저곳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정문 입구에 세워진  하마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사당. 

 

 

                                         전주사고 ;   조선실록, 국가중요서적을 보관하던 곳.

 

 

         

 

 

                        ' 일월오봉도'   포토 존이다.

 

 

 

 

 

                                            어진을 옮기는 모습

 

 

 

 

조과청;  제사 음식 떡이나 유밀 , 다식등을 만들고 보관 했던 곳.

 

제기고;  제사때 사용하는 그릇 , 기구등을 보관하는 곳으로 지면의 습기로 부터

         그릇을 보호하기 위해 마루를 깔았다고 한다.

 

어정 ;  임금님의 음식물을 만들 때나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

 

 

 

      드 므;   화재를 대비해 물을 담아 놓는 가마나 독을 맣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적은 그릇이 무슨 효과가?

                      

 

경기전 안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와 대나무가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전동성당에서 풍남문으로 가는 길 . 멀리 풍남문이 보인다.

지금은 도시 중심에 있어 한적한 모습은 아니다.

 

풍남문은

읍성은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고을을 둘러쌓았던 성을 말한다.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서울의 남대문과 같은 역활을 했다..  그런데 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기자기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