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5. 13:12ㆍ일본
사천왕사를 나와 오사까성으로 갔다.
강을 끼고 걸어 올라 가는 길은 고즈녁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어느곳을 눌러도 그림이 되는.
오사까성 임진왜란의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성이고
무려 15년 동안 매일 3만여 명이 동원되어 세워졌다고 하며 지금 남아있는 것도
처음크기의 1/5. 제2차 세계대전 때 성안에 각종 군사 시설이 들어선 탓에 연합군의 주요 공습목표가 되었다.
오사까성은 2개의 해자와 돌벽으로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벽은 50만개의
돌로 쌓았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정문을 들어서면서 보이는 문어바위; 문어 모양의 얼룩이 있어 붙여졌다고 합니다.
오사까성 제일의 크기를 자랑하는 거석.
무게 130t으로 서쪽으로 200km떨어진 곳에서 운반해 왔다고 하는데
방법은 아직까지 수수께끼라고.
오사카성에 있는 '덴슈까꾸'<천수각 >은 46m로 8층으로 되어 있으며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로 5층까지 이동하고, 그 윗층은 걸어서 이동해야한다.
8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사까는 도꾜 다음으로 큰 도시답게 크고 거대하다.
꼭대기에서 계단을 돌아 내려오면서 여러가지 전시품을 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에 관한 전시 무구, 목상, 의상 병풍등.
아래에 보이는 돔은 오사까죠 홀. 서일본 최대의 다목적 홀로서 만6천석의 좌석을 갖추고 각종 문화행사를 하는 곳.
천수각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세기 오다 노부나가가 시작한 일본통일의 대업을 완수했고,
해외침략의 야심을 품고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정복에 실패했다.
일본의 세력자인 오다 노부나가 휘하의 보병이 되었는데 쾌활한 성격과 세련된 매너 그리고 총명한 두뇌로 인해 사무라이로 발탁되었다.
1582년 노부나가는 가신의 기습을 받고 할복자살했는데, 그는 그 가신을 처단함으로써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았다.
이어 그는 전국을 통일하고자 했던 노부나가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일본 전역의 정벌에 나서 통일을 이뤘다.
1585년 천황으로부터 도요토미라는 성을 하사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 전역을 정복한 후 2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했으나
조선전투 < 임진왜린 >의 불리한 결과에 크게 상심하여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고시마 첫날 (0) | 2019.11.26 |
---|---|
도톤보리 (0) | 2018.04.29 |
세째날, 사천왕사 (0) | 2018.04.25 |
둘째날 교토 ; 산넨자카, 니넨자카 (0) | 2018.04.20 |
교토 청수사 < 기요미즈데라 > (0) | 2018.04.17 |